<인왕제색도>는 한여름 소나기가 지나간 뒤의 인왕산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금강전도>와 함께 진경산수화를 이끈 정선의 대표작이다. 진경산수화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중국의 남종화법을 이용하여 실경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회화적 재구성을 통하여 화가가 느낀 감흥과 정취를 표현하는 화풍이다. 이러한 특성이 <인왕제색도>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인왕제색도>의 산 아래인 전경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인 부감법으로 그리고 산 위쪽의 원경은 멀리서 위로 쳐다보는 고원법을 사용하여 바로 앞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는 듯한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림 오른쪽 상단 여백에는 정선이 “인왕제색 신미윤월하완”이라 쓰고 그 밑에 ‘정선’이라는 백문방인과 그의 자인 ‘원백’이 새겨진 주문방인이 찍혀 있어 그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원경에 배치된 바위 봉우리들이다. 이 봉우리들은 먹을 듬뿍 써 여러 번의 붓질을 하는 적묵법과 붓을 기울여 먹이 묻는 면을 넓게 하여 수직으로 내리긋는 부벽준법으로 통해 먹을 층층이 쌓아 중량감과 중후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원래 인왕산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하얀 바위산이지만 정선은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그가 느낀 인왕산의 강렬한 기운과 인상을 표현했다.
산 아래에는 비 온 뒤 물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모습을 여백을 통하여 표현하였고, 능선은 먹을 엷게 사용하여 표현했다. 이 수평으로 배치된 여백이 수직으로 그려진 검은 바위 봉우리와 대비되며 화면에 안정감을 준다. 물안개의 앞인 전경에는 소나무와 다양한 크고 작은 수목과 가옥을 배치하여 분리되어 보일 수도 있는 안개와 봉우리를 하나의 장면으로 어우러지게 만들고 있다.
<인왕제색도>는 1751년 정선의 나이 76세에 완성한 역작으로 그의 진경산수화풍의 정수가 많이 담겨있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김홍도, 심사정, 이인상 등으로 후대 화가들에게 이어지며 조선 후기의 회화 발전에 이바지하였고, 우리나라의 산천을 주자학과 연결하고자 했던 문인 사대부들의 풍류 문화 발전에도 영향을 끼쳐 조선 후기의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만들었다.
최문영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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