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건축사들의 공존

한 지역건축사회 건축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증언과 녹취를 바탕으로 대한건축사협회와 경기도에 민원을 할까 고민 중이라는 말을 듣고 ‘공존’이라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건축사사무소를 등록한 건축사들이 수행하는 업무 중에는 건축법 제27조 규정에 의한 건축물의 건축 허가, 건축신고, 사용승인, 임시 사용승인에 따른 현장조사, 검사 업무를 허가권자에게 위임을 받아 업무 대행 등을 하고 있다. 대행 업무의 취지는 허가권자의 업무 비중을 줄이면서 건축 전문가인 건축사들로 하여금 업무를 대행하게 하여 업무의 효율성과 전문 지식을 활용하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즉 현장조사·검사 대행 업무를 수행하는 건축사는 공무원의 신분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신속 정확하고 공명정대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운용 실태를 살펴보면 이 제도의 근본적인 취지와 다르게 마치 완장을 찬 거만한 권력자처럼 지나치게 권위적이거나 사심이 가득한 편법적인 운영, 지역 이기주의가 난무하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 번 일을 계기로 지난날을 회상해 보니 본인도 용인지역 건축사회 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우리 지역 건축사를 보호하고 먹거리를 창출 해 준다는 미명 아래 같은 실수를 범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건축사는 지역을 넘나드는 설계, 감리를 할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수주가 많았던 시절에는 사무소 소재지 수주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지금처럼 전국 1만2천명의 많은 건축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는 수주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주야로 뛰어야만 근근이 유지할 수밖에 없다. 누구를 위한 안배나 지역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40%에 육박하는 1인 건축사들의 상황은 더욱더 심각하다.

앞으로 2023년 8월이 되면 전국의 모든 건축사들이 대한 건축사협회와 시·도 건축사협회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된다. 명실상부 모두가 하나가 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회원, 비회원의 굴레가 사라지고 대한건축사협회 라고 하는 큰 줄기에 서서 한 곳을 바라보는 진정한 통합의 시대가 된다.

통합의 시대를 위해서라도 지역 이기주의를 위한 제도는 사라져야 한다.

경기도건축사회에서는 자체 정화 목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현장 조사·검사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2~3명이 합동으로 조사하고 있다. 지역 건축사회 설계분과 타 지역건축사 설계분에 대한 이중 잣대를 통한 검사가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현장조사·검사업무 대행에 따른 비용에 대해서도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어 국토부, 경기도와의 협의를 통해 적정 대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현재 하남지역건축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하여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수수료 현실화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먼저 자정을 하고 공존함으로써 우리의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건축주의 입장에서 좀 더 신속하고 공명한 현장 조사·검사 업무 대행이야말로 건축사를 건축 전문가로 인정한 허가권자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검수를 받는 건축사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검수를 하는 건축사는 근본적인 취지에 맞는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서로가 공존하는 건축 문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정내수 경기도건축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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