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당신은 청중인가요, 관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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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를 ‘보러’ 오는 이들을 관객, 음악 공연을 ‘들으러’ 오는 이들을 청중이라고 보통 부른다.

물론 둘은 뜻이 비슷한 말로 혼용되기도 한다. 눈과 귀의 감각은 구분된 것이면서도 동시에 작동하는 경우가 많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각각의 감각 또한 사람마다 민감도, 감수성이 다르기 마련인데, 그 차이는 신체의 물리적 조건에 기인하기도 하고 경험이나 습관이나 훈련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완벽한 최후의 1초 교향곡 2번>은 기존에 학습된 감각, 경직된 감각을 활짝 풀어놓도록 하는 전시다. 그리고 이 ‘전시’는 백남준의 1961년작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을 연주한 것이기도 하다. 백남준이 수수께끼 같은 지시문들을 써 놓은 일종의 악보로서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

“보통의 콘서트에서는 소리가 움직이고 관객은 앉아 있다....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에서는 소리와 그 밖의 것들이 움직이고 관객도 움직인다.”

백남준이 이 작품을 교향곡이라 이름 붙이고 소리와 관객이 움직인다고 말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원래 교향곡은 관현악 연주를 위해 작곡되는 규모가 큰 짜임새의 곡이다. 흔히들 교향곡이란 것이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정교한 계획과 연습에 의해 매우 조화롭게 연주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완벽한 최후의 1초>에서는 실력 있는 악기 연주가들이 일부러 형편없는 연주를 하고, 사운드 전문가는 황학동 시장을 뒤져 1960년대 테이프 녹음기를 찾아내 상상 속 소리를 채집해 그 안에 담는가 하면, 대중음악 뮤지션은 백남준의 「음악의 신존재론」이라는 텍스트를 시처럼 낭독하기도 한다. 전시실에 막 들어서는 관객에게는 이 같은 여러 소리들이 한꺼번에 덤벼든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전시에는 시각 예술가,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사운드 디자이너, 가수, 배우, 소설가, 연구자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백남준의 교향곡 악장들을 연주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 곡을 완성하는 것은 관객이다. 전시 곳곳에 마련된 장치들에 당신이 어떻게 참여하느냐에 따라 백남준의 작품은 매번 전혀 다르게 연주될 수 있다. 백남준이 자신의 교향곡을 통해 관객에게 선사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 정해져 있지 않음에서 오는 자유, 이 자유 안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들의 감각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예술의 본질적 경험이다.

“좀 더 강한 불확정성으로 향하는 다음 단계로서 나는 청중이(혹은 이 경우에는 관객이) 자유롭게 행동하고 즐기기를 바란다”(백남준, 1961).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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