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꿀벌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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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태어나자마자 먹게 되는 젖당은 인류의 유전자에 달콤한 맛에 집착하는 미각을 심어놓았다. 모유의 락토스에 길들여진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본능적으로 벌꿀을 채집했으며, 어머니의 품속에서 느꼈던 유혹의 맛을 비로소 벌꿀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인류가 처음 벌꿀을 채집한 시기는 스페인의 동굴벽화를 통해 기원전 700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붉은 색으로 그려진 벽화에는 벌꿀을 따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왕족을 꿀벌로 표기하고 있다.

인류에게 꿀벌은 협동과 근면, 생명력의 상징으로 각인됐고 벌꿀은 인간에게 원기를 줬다. 하지만 오늘날 꿀벌의 처지는 2035년쯤이면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올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UN은 2017년부터 꿀벌 보호를 위해 매년 5월20일을 ‘세계 벌의 날’로 지정해 벌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올봄 전국의 양봉농가에서는 월동 후 꿀벌이 집단으로 실종된 사실이 확인 됐다. 이처럼 꿀벌 집단이 갑자기 사라지는 군집 붕괴 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은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러 나간 일벌들이 돌아오지 않아 여왕벌과 유충이 폐사하고 벌집이 비는 것을 말한다. 군집 붕괴 현상은 2006년 미국의 27개 주에서 최초로 보고됐으며 유럽에 이어 국내에서도 꿀벌의 실종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전국의 227만여개 벌통 중 18%인 39만여개의 벌통이 피해를 입어 약 70억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경북에서는 전체 벌통의 절반 수준인 48% 가량이 피해를 입었고, 전남에서는 전체 양봉농가의 74%가 사라져 양봉이 초토화 됐다고 한다.

꿀벌은 1천500여 재배 작물의 30%와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여개 주요 작물 중 약 71종의 수분을 돕는다. 꿀벌이 사라지면 벌들의 수분을 통해 생장하는 식물들은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돼 멸종할 수도 있다.

농촌진흥청이 전국의 양봉 농가를 조사한 결과 올해 꿀벌의 대규모 실종은 꿀벌응애류와 이상기후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살충제와 기후변화 등의 영향을 의심하고 있다.

인류의 작은 거인,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꿀벌이 사라진 지구는 상상하기 어렵다. 꿀벌이 지탱해주던 생태계의 고리 하나가 붕괴되면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동희 여주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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