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보았다’ 맥아더 장군이 인용한 플라톤의 금언대로 단시간 내 끝날 것 같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민간인과 아이들까지 무참히 학살하는 참상과 러시아의 사악함을 보게 했다.
인간의 존엄을 강조하는 21세기 지구라는 행성 속에서 비록 인류가 지상천국 비슷한 것을 달성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라는 폭력 속에서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전쟁의 위험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에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먼 전쟁’이 아니다. 어쩌면 남북 간 전쟁이 발발하면, 양쪽 모두 한반도를 멸절(滅絶)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핵 전투무력’ 동원을 호언(豪言)하고, 우리 역시 양보 없는 응징과 타격을 강조하고 있다.
전쟁은 군사력의 강약에 따라 결판 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주일이면 끝날 줄 예상했다. 그러나 강대국 러시아는 그들의 계산과 달리 전쟁의 수렁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으로 러시아 입장에서 어렵고 값비싼 전쟁으로 변했다.
북한이 자랑하는 핵무기도 절대무기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러나 핵 무장으로 국가 주권의 대외행사가 제약되고 국민경제가 위협 받아 대다수 주민의 인내와 희생이 한계를 넘으면 핵 무장은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국가의 흥망성쇠에서 지도자의 역량과 자위력은 매우 중요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뛰어난 전쟁 지도력은 국민을 결속시켰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며 키이우에 남아 내부 혼란 방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청년들은 군에 입대했고,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은 후방 지원 활동을 펼쳤다. 조국이 지향하는 가치가 생명을 바쳐 수호할 만하다고 확신하는 국민들은 항전 의지를 더욱 굳혔다.
지도자의 근본은 국가 주권과 국민 생활의 수호이다. 조선왕조 역사에서 왜군의 침략에 백성과 한양도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도망한 선조(宣祖)를 역사는 안거위사(安居危思)의 방책 없는 무능한 군주로 평가한다. 역사의 오독(誤讀)이 아니라면 왕이라 칭하기에는 한없이 부끄럽지 아니 한가? 군사력과 정치권력의 속성도 비슷하다. 전쟁에 패해서 나라를 빼앗긴다면 진영의 이익도 개인의 영달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인류사에서 역사적 진보는 권력이 아니라 '상호 간의 공존과 공영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명백한 패러독스이다. 극단적 대립과 증오가 해소되고 다른 생각과 가치를 서로 존중하면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지혜를 강구해야 하는 게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또 다른 교훈일 것이다. 문을 여는 새 정부 용산 시대, 정치적 문제, 먹고사는 민생문제, 전쟁과 평화의 안보 문제 와 같은 책임까지 자신 있게 걸어 나가는 국가적 리더십을 기대한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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