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어려운 너무나 어려운 서류꾸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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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수 시인·구지옛생활연구소 소장

봄이다. 산과 들이 파릇파릇 제색을 내기에 바쁘고 벚꽃과 배꽃, 조팝이 온산을 희푸르게 물들이는 희망의 계절이다. 코로나로 지친 군상(群像)은 꽃구경으로 시름이라도 잠시 내려놓게 하는 그런 계절이다.

주말이면 공원이고 시장통이고 사람이 모일만한 곳에서는 크고 작은 규모의 공연이 줄을 잇고 향유자는 제공자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신명에 잘 적응하는 우리네. 흥에 겨운 모습이 마냥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신명을 만들기 위해 계획서와 결산서 따위의 서류를 꾸며야 한다. 보조금이라는 명목의 공연비 액수가 많던 적던 십수장에서 수십장에 달하는 보고서를 꾸며야 한다. 서류꾸미기에 익숙한 이들도 서투른 이들도 고민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한두 차례는 기본이고 네댓 차례 퇴짜를 맞아야 서류가 완성되고 접수된다. 순수한 예술가들은 서류에 서툴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은 합격한 서류를 기본으로 해 꾸미지만 영락없이 퇴짜를 당한다.

아는 어떤 예술가는 서류꾸미기 싫어 아예 공모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제때에 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해 공모에 참여조차 못하는 불이익도 당하기도 한다.

보조금을 내주는 주최에 따라 양식도 다르고 서식도 다르다. “쥐꼬리만큼 보조하고 서류는 소꼬리보다 길다”는 불평과 불만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공모부터 결산까지 서류꾸미기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이 순수예술가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게다가 코로나형국으로 담당부서를 찾아가 도움을 받는 것도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 서류꾸미기에 서투른 예술가의 넋두리다.

주최자들은 예술가들이 작성하기 어려운 서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편하고 질 높은 공연과 전시가 이어진다.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 행복추구권 중에 문화예술을 제공하고 향유(享有)하는 것은 비중이 가장 크다.

그래서 제안을 한다. 주최 담당부서가 시군구이던 문화예술재단이던 이러한 서류를 작성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이를 전담하는 요원을 배치하자는 것이다. 근무 연수에 따라 직무이동을 하는 일반직이 아닌 붙박이 요원을 말이다. 촉탁직이던 공무직이던 일자리 창출에도 한몫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공연은 짧아도 여운은 길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한철수 시인·구지옛생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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