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경찰’이라고 밝힌 글이 주목을 끌었다. 지난 18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왔다. “현직 경찰인데 현재 검수완박을 누구보다 반대하는 건 경찰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현재 경찰의 업무 과중을 설명했다. “지금도 수사권 조정 이후 불필요한 절차가 너무 많아져 업무 과중으로 수사 지연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업무 과중의 실상도 밝혔다. “현재도 수사관 한 명 당 자기 사건을 50~200건씩 가지고 있다.”
블라인드는 회사 이메일로 본인 인증을 해야 글을 작성하거나 댓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 현직 경찰이 쓴 글이라고 언론은 추측한다. 통상적으로 ‘검수완박’의 수혜자는 경찰로 해석된다. 현실적으로 검찰로부터 넘어올 수사 권한이 커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글은 검수완박을 반대하는 측의 논거로 활용됐다. ‘수혜자로 여겨지는 경찰까지도 검수완박을 부담스러워한다’로 인용됐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본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업무 부담이다. 우리가 앞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경찰이 자체 조사한 자료가 있다.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을 조사한 통계다. 2020년 55.6일에서 2021년 64.2일이 됐다. 8.6일 늘었다. 그 사이 변화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사건 처리 기간이 지연된 직접 계기가 수사권 조정인 것이다. 당연히 경찰은 ‘잘하려다 보니 늘어났다’고 해석한다. 그렇더라도 사건 처리가 늘어지고 있다는 현실은 달라지는 게 없다.
더구나 여기엔 구조적이고 준비 안 된 이유가 있다. 바로 경찰 수사력에 대한 제도적 지원책이다. 수사 기관의 전문성은 제도적으로 뒷받침 돼야 한다. 경찰에 권한을 주려면 그에 맞는 제도도 맞춰줬어야 했다. 그게 부족했고, 그 부담을 경찰이 그대로 떠 안고 있는 것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설문을 했다. 소속 변호사 1천55명에 물었다. 758명(71.8%)이 ‘경찰의 법률 이해도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민변 등 여러 기관 조사에서도 비슷했다.
수사의 주체는 검·경이다. 당사자는 국민이다. 검수완박되면 사건은 모두 경찰로 간다. 경찰의 수사 능력 제고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국민 입장에서는 수사 주체보다 이게 중요하다. 그런데 작금의 관심은 수사 주체 뿐이다. 앞선 ‘현직 경찰’도 이런 점을 하소연 한 것일 게다. 수사권만 토론하지 말고, 수사제도도 개선해달라는 요구였을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 현장의 소리에 귀 여는 집단이 없다. ‘넘기자’ ‘넘기지 말자’의 싸움만 하고 있다.
수사권 조정으로 수사 지연이 8.6일 늘었다. 검수완박하면 또 얼마나 사건 처리가 늘어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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