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스러운 꽃송이들이, 살랑거리는 이파리들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계절이다.
계절의 아름다움만으로도 그럴진대 긴 시간 우리를 옥죄었던 감염병의 제약까지 하나씩 풀리고 있으니, 그동안 움츠러들었던 마음들이 봄바람을 타고 나부끼며 사람들을 생동하게 하고 있다. 미술관에도 한층 밝은 표정, 한층 가벼운 발걸음의 관람객들이 부쩍 늘었다.
이번 5월에는 어린이과 가족 관람객의 웃음소리가 유독 반가울 것이다. 마치 삭제된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지난 2년에 대해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자연과 예술을 누리려는 갈망이 봇물 터지고 있는 지금, 예술가 백남준의 시간에 대한 사유를 떠올려 보게 된다.
백남준은 비디오를 예술의 매체로 사용하면서 그 매체의 속성을 삶과 자연의 시간과 연결지어 탐구하곤 했다. 1980년 한 강연에서 백남준은 자신이 비디오로 작업하기 전에는 색이 시간의 작용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비디오라는 기술 매체의 원리 속에서 다시금 깨닫게 된 사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자연을 돌아보라. 계절마다 고유한 색이 있다. 봄은 밝은 초록색을 닮았다. 처음에는 연한 초록으로 시작해서 4월과 5월이 되면 갖가지 꽃들의 색이 만발한다. 그리고 여름은 몹시 파랗다. 가을은 노란빛에서 붉은빛으로 물든다. 그리고 잿빛의 겨울이 다가온다. 비디오의 색도 바로 그 원칙을 따른다.” 텔레비전의 주사선들이 매우 빠른 시간의 연속을 통해 화면에 색들을 만들어내는 기술적 원리에 대한 백남준의 비유다.
백남준은 또한 우리 인생의 시간을 비디오테이프에 비유하기도 했다. “테이프가 처음에는 천천히 감기다가 끝에 가서는 아주 빠르게 감긴다. 우리는 실제 삶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당신의 삶을 돌아보라. 아이였을 때 하루는 아주 길었다. 그러나 서른이나 서른다섯 살이 되면 하루가 더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다가 마흔이 되면 하루가 더 쏜살같이 지나간다.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방식은 비디오테이프와 매우 닮았다.”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기할 수는 있어도 우리 삶을 되감기할 수는 없다. 비디오테이프 재생기에는 ‘빨리 감기’ ‘되감기’ ‘정지’ 버튼이 있지만 삶에는 ‘시작’ 버튼 하나뿐이다.” 아날로그테이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분명한 점은 우리 삶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충만하게 느껴질 올 봄, 5월의 매순간이 모두에게 싱그러운 시작 버튼이기를.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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