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삶 만족도 OECD 최하위 불확실한 미래에 방황하는 학생 자아정체성 확립 기회 제공해야 논리적 사고력 강화 토론·글쓰기 관심분야 전문가와 미래 설계 등 배움 욕구 촉진시키는 교육 필요
송희진 작가의 ‘진짜 곰’ 동화는 서커스단에서 태어나서 자란 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곰은 매일 서커스단에서 묘기를 하고 주어진 먹이를 받아먹으며 사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평소처럼 곰은 무대에서 묘기를 부렸지만, 관중 중의 한 소년이 “저건 진짜 곰이 아니야!”라고 외친 소리에 충격을 받고 실수를 한다. 그날 이후 곰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고 무대에서 잦은 실수를 반복하게 돼 결국 서커스단에서 쫓겨난다.
곰은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 도중에 만나게 된 다양한 곰들에게 진짜 곰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지만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한다.
곰은 한참을 방황하다가 우연히 숲속에서 불어오는 자연의 냄새를 맡고 숲에 들어가게 된다. 숲속에서 곰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고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잔다.
아이에게 ‘진짜 곰’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학교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동화 속 서커스단과 조련사, 곰을 학교와 선생님, 학생으로 대비시켜 봤다.
동화책 속의 곰은 자신이 자란 서커스단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학교는 아이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일까?
■ ‘학생에게 적합한 질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자!’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공부에 사용하는 시간은 결코 적지 않다.
지난 2018년 기준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일주일을 기준으로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이 49.43시간으로 OECD 평균인 33.92시간에 비해 15시간이나 더 많은 반면, 청소년들의 삶 만족도는 6.62점으로 최하위권이다.
아이들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정작 삶의 만족도가 그에 비례해 향상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입시에 함몰된 공부라면 정작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2015년 국회에서 조사한 학적변동 대학생 수를 살펴보면, 자퇴생이 3만8천523명, 전과생이 1만2천179명, 휴학생이 46만7천570명이다.
군입대나 재수 등 기타 이유를 생각해봐도 학적변동이 많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갔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고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는 청년들의 현상을 소위 중학교 단계의 ‘중 2병’에 대비해 ‘대2병’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이런 현상을 줄이려면 최소한 학교에서 청소년기에 스스로 왜 공부를 하는지, 자신에 대해 적합한 질문을 던지고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 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하며 실패하고, 다시 도전해 작은 성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 ‘학교는 안전한 자유(自由)의 공간이 돼야 한다’
동화책 ‘진짜 곰’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만일 곰이 현실에서 서커스단을 도망나와 숲으로 갔다고 생각해보자. 어릴 때부터 사육사에게서 사료를 얻어먹으며 훈련을 받고 자란 곰이 야생에 가서 곧바로 적응할 수 있을까? 아마 현실에서는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곰이 야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인간의 보호 아래 안전한 공간에 머물면서 조금씩 야생에 적응해나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곰 이야기를 학교에 적용해보자. 곰이 야성을 회복해 자유를 누릴 수 있듯이, 학생 또한 배움의 야생성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자유(自由)를 누릴 수 있는 길이다.
본디 자연생태계에서 약한 존재인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생존하기 위해 서로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고, 학습의 결과물을 공유했다.
배움에 대한 욕구는 인간에게 이미 내재돼 있지만 안타깝게도 학교를 졸업하면 배움을 도구의 수단으로만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학교가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욕구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좋아하고, 왜 공부해야 되는지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내가 살아가는 세계와 나와 관계 맺는 사람에 대해 배우고 알아갈 수 있는 안전한 학습공간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故 신영복 선생님은 공부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해 인식하고 성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또한 ‘자유(自由)란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라고 해석했다. 사람이 자기의 이유를 찾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고 해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를 알아가는 길찾기 과정으로 정규 교육과정 중 자유학년제가 있지만 일회성 체험에 그치거나 선행학습의 기회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 스스로를 찾기엔 중학교 1학년 시기는 조금 이른 나이일 수 있지만, 중학교 3년의 기간 동안 여유있게 천천히 탐색할 수 있는 다양한 과정과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학교 밖 마을학교로는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꿈의 학교나 몽실학교, 서울시교육청의 1년 전환학교로 오딧세이 학교 등을 들 수 있다. 별도의 학교가 아니더라도 공교육 내에서 정규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더 확대해 학교 수업시간에 융합교육과정으로 시도할 수 있다. 학교 텃밭에서 아이들이 직접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열매를 거두는 노작활동과 학교 주변의 다양한 식물들을 찾아 그려보는 미술활동, 식물도감을 만들면서 생물에 대해 깊이 배우고, 이에 대한 소감을 시나 글쓰기로 표현해보는 활동, 옷이나 직접 쓸 물건을 어설프더라도 제작해보는 만들기 수업, 학교공간 중 학생들을 위한 공간을 직접 구상해보고, 설계에 참여해보는 것 등 다양한 활동이 쉽진 않지만 서로 노력하고 합의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또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알아가는 교육도 필요하다. 예컨대 토론과 글쓰기 교육은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데 도움을 준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와 교과를 연계해 토론하고, 문제를 정의해 해결하기 위한 정책 제안을 해보는 것이나, 내가 관심 있는 진로분야의 현업에서 활동하는 어른들을 만나 삶의 지혜를 배우는 ‘사람책’ 교육을 들 수 있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의 시간을 내거나 혹은 지필고사가 끝난 후 자율교육과정 기간 동안 교육활동을 설계하면 어떨까?
학생에게 익숙한 곳을 벗어나 나의 관심사가 있는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일정기간 동안 배우는 인턴십 활동 등도 자유(自由)를 탐색하기 위한 좋은 활동이다.
스스로 학습을 즐기고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을 ‘호모에루디티오’라고 한다.
VUCA 시대에 배움의 야생성을 회복하고 평생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은 학생 개개인의 삶에 스스로 적합한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그 질문을 탐색하며, 스스로 배움을 찾고 실천할 때 생긴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안전한 자유(自由)의 배움터가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동배 성남교육지원청 장학사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