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교육공무원 승진제도 체감 못해 학생·학부모·교직원·지역사회와 머리 맞대 역량·전문성 갖춘 교장 임용하는 공모 제도 민주적 학교자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
■ 우리 안에도 벌거벗은 임금님이...
몇 년 전 경기도교육청 인사정책 연구 과정의 FGD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학생, 학부모, 교사, 교감, 교장, 지역사회 인사 등 다양한 교육 주체가 골고루 참여한 그 자리에서는 ‘교장 임용 제도’를 주제로 토론이 진행 중이었다.
전문가1 “교장이 되는 다양한 길이 있어야 하는데 현행 승진제도는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친 교사가 아닌, 승진 점수를 모은 교사가 유리한 불평등한 구조입니다”.
전문가2 “승진 준비하시는 분들 젊어서부터 얼마나 고생하시는데 그분들의 노력을 폄훼해서는 안 됩니다. 연구 점수 따야죠, 1정 연수 점수도 좋아야 됩니다. 농어촌 점수 따느라 가족과 헤어져 이산가족으로 몇 년 살아야 하고요. 교무부장으로 학교 온갖 궂은 일 도맡아 하면서 근평도 따야 하지요. 이렇게 고생한 사람이 승진하는 것이 왜 불평등입니까?”.
사회자 “네. 선생님들의 뜻 잘 알겠습니다. 이제 학생 의견도 한번 들어보죠. 학생?”.
학생 “네? 아...네...제가 사실 선생님들 승진 이런 건 잘 몰라서요. 할 말이 없는데...근데 아까부터 좀 이상한 건 있는데...교육청에서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든다고 그러시잖아요...근데 왜 선생님들이 점수를 따는지...그게 우리 행복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저는 그게 이해가 좀 안 돼서요...”.
어른들 모두 빵 터졌다. 지루한 이야기 속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교육공무원 승진제도가 정말 아이들의 행복과는 아무 상관없는 거라는 걸 우리 모두 정말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모른 체한 것일까.
■ 출산 방법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
교(원)장 임용 제도를 크게 분류하자면 승진과 공모 두 가지다. 승진해 교장이 되는 길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대로 교사가 경력 점수, 연수 점수, 가산점, 근무성적평정(이하 근평)을 받아서 교감, 교장이 되는 것이다.
공모는 이와는 다르다. 교장 결원이 예정된 학교가 학교 공동체 의견 수렴을 거쳐 교장을 공모하면 교원이 지원한다. 이때 학교는 자격 요건을 교장자격증 소지자(현 교장, 교장자격증을 소지한 교감이나 교육전문직원)로 제한할 수도 있고, 교장자격증 미소지자에게 열어둘 수도 있다. 어쨌거나 요건에 맞는 교원이 지원하면 교직원, 학부모, 학생(아직 학생은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등 학교 공동체는 공정한 심사를 거쳐 원하는 교장을 선발한다.
글을 쓰다 보니 우리가 두 가지 문제를 섞어서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하나는 학교에서 필요한 교장을 임용하는 제도이고, 또 하나는 교육공무원이 승진하는 제도이다. 이 두 가지는 엄밀하게 다른 문제인데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로 묶어 생각해왔다. 교육청이 진행한 인사정책 연구에서조차 ‘교장 임용’을 교육공무원 승진제도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산모의 출산과 아기의 탄생을 산모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처럼. 산모 관점에선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가 중요하지만 태어나는 아기 관점에서는 어떤 방법이든 건강하고 안전하게 태어나서 안락하게 엄마 품에 안기는 것이 가장 중요할 텐데.
우리가 교장 임용 제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힌트가 여기에 있다. 교육공무원의 승진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학교가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학교가 필요로 해서 교장이 임용돼야 하는 것인가.
많은 연구 결과나 인터뷰 자료가 우리에게 보여준다. 학교 교육 공동체는 단위학교의 여건을 잘 알고, 학생, 학부모, 교직원, 지역사회 등 교육주체와 민주적으로 잘 소통하며 학교를 책임 경영할 수 있는 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교장이 부임해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 교장공모제 전면 시행의 때가 왔다
이에 미래학교자치연구소(미자연)는 교장공모제의 전면 확대 시행을 과감히 제안하고자 한다.
교장 승진후보자의 교장 임용은 교육공무원 평정 절차에 따라 승진후보자 명부에 등재된 교원을 순서대로 교장 결원교에 발령을 내는 일이다. 임용 부서에서도 여러 정보를 수집해 최대한 좋은 발령을 내려고 노력하지만, 학교의 바람과 교장 승진후보자의 면면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므로 적재적소 임용은 한계가 있다.
공모제에 의한 교장 임용은 다르다. 학교는 학생, 학부모, 교직원 등 교육주체의 의견수렴을 통해 공모교장제를 선택하고 좋은 교장을 선발하려는 준비를 한다. 지원자들은 해당 학교에 대한 자료를 모아 현황과 요구를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해 학교경영계획서를 작성하고 심층면접 준비를 한다. 이 과정에서 학교 공동체 구성원은 지원자의 리더로서의 역량과 태도를 검증하게 되고 지원자는 교장이 될 준비를 치열하게 하게 된다. 임용 이후 학교에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경우, 학교와 교장이 서로를 자발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더 큰 책무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게 된다.
실제 공모교장이 임용된 학교에서는 교장뿐만 아니라 학생, 학부모, 교직원 모두 공모교장 임용으로 안정적이고 발전적인 학교 운영은 물론, 교장과 교육주체 간의 소통이 활성화돼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학교 문화가 실현됐다고 평가해 교육 공동체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 살아있는 제도로 미래학교 만들기
코로나19로 인해 미래가 예상보다 빨리 우리 앞으로 와버렸다. 죽은 제도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교장공모제는 현재의 국가공무원 체제에서 제한적으로나마 학교가 민주적 학교자치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살아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교장공모제를 전면 확대 시행해 준비된 교장, 교육 공동체의 선택, 학교자치 등 새로운 교육의 키워드를 담아 혁신학교를 넘어 미래학교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조윤금 성남 한솔고등학교 교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