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와 커피, 라디오, 아파트. 어디를 가든 우리는 외래어, 외국어를 마주한다. 그런데 요즘 개인, 민간단체, 공공기관을 불문하고 불필요하게 이를 남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스크린도어, 하이패스, SH공사, 혁신 클러스터, 월드플라자 등이 그 예다. 이렇게 외래어, 외국어를 남용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왜 남용을 삼가야 하고, 어떠한 방향으로 불필요한 외래어·외국어를 순화시켜야 할지 고민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2020년 국립국어원의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 따르면 외래어, 외국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기존 어휘로 표현하기 어렵거나 부적절한 말들을 보다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였다. 이와 동시에 외래어를 멋있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외래어, 외국어는 어휘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탓에 오히려 우리말이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다 보니 외래어, 외국어 남용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말을 두고도 불필요하게 사용되는 외래어, 외국어를 순화해야 하는 이유는 소통의 단절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세대, 지역, 학력 및 소득에 따라 외래어나 외국어의 사용 경험과 이해도가 다르다. 특히 일반적으로 젊은 세대나 고학력층은 외래어, 외국어 사용에 개방적이고 수용력이 뛰어난 반면 노년층이나 저학력층은 폐쇄적이고 외래어, 외국어 수용 능력이 떨어진다. 외래어, 외국어 남용이 심화될수록 집단 간 소통은 더욱 소홀해질 것이다. 이는 세대 갈등, 학력 갈등 등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사실 오래전부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리말 순화를 위한 여러 노력들이 이뤄져 왔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순화어들이 대중에게 널리 쓰이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새로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
외래어, 외국어 순화가 실패한 원인을 크게 3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 번째, 순화한 어휘와 본래 외래어·외국어의 의미가 서로 같지 않았다. 2020년 국립국어원의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를 보면 순화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순화어가 본래의 의미를 정확히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42.6%)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과거 스마트폰을 똑똑전화라고 순화했을 때 사람들은 순화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이가 엄마에게 “폰 사주세요”라고 하지 “전화 사주세요”라고 하지 않는다. 집 전화가 울렸을 때 “전화 받아”라고 하지 “폰 받아”라고 하지 않는다. 즉, 우리말에서 폰과 전화는 이미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스마트폰 대신 똑똑전화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 ‘댓글’은 순화에 성공했다. 리플을 쓰던 시절, 이 말을 댓글로 순화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당시 리플(reply)은 댓글과 의미의 차이도 없어서 이 의견이 채택됐다. 그렇게 현재 ‘댓글’은 자연스럽게 널리 쓰이고 있다.
두 번째, 외래어·외국어가 우리말로 완전히 정착되거나 거의 정착되지 않았다. 바꾼 순화어가 본래 어휘와 같은 의미를 지녔다 하더라도 이미 그 외래어·외국어가 일상화 됐다면 순화어가 널리 쓰이기 어렵다. 포스트잇(붙임쪽지), 이모티콘(그림문자) 등이 그 예다. 너무 정착이 안된 어휘를 다듬어도 곧 본래 어휘가 언중에서 쓰이지 않을 것이므로 순화어 또한 필요가 없다. 때문에 전문가들의 적절한 판단과 예측이 요구된다.
세 번째, 순화어가 언중의 언어 감각에 맞지 않았다. 순화어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순화어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과도 상당한 연관이 있다. 국민들에게 순화어가 올바른 단어이고 외래어·외국어는 올바르지 않은 단어라는 등의 인식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미 여기 저기에서 쓰이고 있는 외래어·외국어를 대체해 생소한 순화어를 사용하라고 권하는 것은 거부감을 유발할 수 있다. 스킨십→살갗닿기·피부접촉, 시리즈→연속(물)·총서, 마네킹→매무새 인형, 드레싱→맛깔장 등의 사례는 대중들이 촌스럽다고 느낄 만하다. 따라서 시민들과 협력을 통해 언중의 언어 감각을 반영한 순화어가 만들어져야 한다.
똑똑전화, 그림말, 살갗닿기와 같이 위의 기준을 고려하지 않은 순화는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것이다. 언어의 본래 목적인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적절한 외국어·외래어 순화가 절실하다.
채연우 화성 반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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