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선택을 강요하는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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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종 (재)안산환경재단 대표이사

선거는 그 사회가 갖고 있는 핵심적인 모순들을 노출하고 공론화함으로써 사회적인 문제들을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는 선거를 통해 우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들을 제거하기 보다는 지역갈등, 빈부갈등, 이념갈등 등을 부추겨서 갈등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그 모순들을 악화시켜왔다.

우리 사회는 형식적·제도적 민주주의는 이뤘으나 내용적으로는 여전히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사회임을 입증하고 있다. 강자가 약자에 우선하고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하는 적자생존, 약육강식, 자연도태를 당연시하는 파시즘에 매몰된 우리들의 모습을 선거를 통해 확인하지만 해결은 쉽지 않다.

사전 투표가 시작된 6·1지방선거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꽃, 축제의 장이 돼야 할 정치판은 이미 전쟁터가 됐다. 설득과 타협과 상생의 정치는 사라지고 혐오를 넘어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야만의 정치가 판을 친다.

두 거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책임이 크다. 양당은 견고하고 불공정한 정치적 독점 지배체제를 누리고 있지만 고치거나 바꿀 생각이 없다. 따라서 시민들의 선택은 매우 제한적이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양당 이외에 다양한 사회, 폭넓은 의견들을 수렴할 제3의 의사는 실현되기 힘들고 그런 선택은 그냥 묻히는 구조다. 유권자들은 사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불가피 최악을 피해서 차악의 후보에게 투표를 하게 되는 당혹스러운 일을 반복하고 있다.

오는 6월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도 양당의 독점 체제는 견고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교육감 후보를 제외하고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수는 총 7천523명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천975명으로 가장 많은 후보를 출마시켰고, 근소한 차이로 국민의힘은 2천927명이 출마했다. 공식적인 양당의 후보 비율은 78.4%지만 양당의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해 실제로 양당의 출마 비율은 90%를 넘는다. 양당에 이어 정의당이 191명, 진보당이 178명의 후보를 출마시켰다.

광역시·도지사의 경우 17개 모든 광역시·도에서 양당 후보가 1대 1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지자체장 226개 선거구도 마찬가지로 양당 독점 현상이 드러난다. 573명의 후보 중 더불어민주당 201명, 국민의힘 195명이 출마했고, 실제 당선권에 있는 후보들 중 양당을 제외하고는 유력 후보가 없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출마가 확정된 후보를 만드는 과정에 민심이 개입할 여지가 매우 적다는 점이다. 지방자치의 본령은 지방분권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시민 후보의 등장이 중요한 이유다. 작금, ‘시민’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공천권’은 누가 행사했는가? 이번 선거를 계기로 한번 쯤 돌아보고 따져 물을 일이다.

윤기종 (재)안산환경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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