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후의 주거지 고시원... 희망의 사다리가 중요하다

2018년 11월 서울 종로 한 고시원의 화재는 큰 충격파를 던졌다. 삽시간에 7명이 죽고 11명이 다쳤다. 한 명이 겨우 비켜갈 만한 복도에 하나 뿐인 탈출구마저 불길에 막혔다. 생존자들은 창문으로 뛰어 내리거나 배관을 타고 탈출했다. 그래서 월세 4만원 차이의 창문방이냐 아니냐가 삶과 죽음을 갈랐던 사고였다.

이 사고는 또한 ‘고시생 없는 고시원’의 민낯을 보여줬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 휩쓸린 ‘경제 난민’들 최후의 피난처였다. 지난 주 본보에 ‘좁디좁은 방 한 켠에...매일 삶을 욱여넣다’(23일자 1·3면)라는 제하의 르뽀기사가 실렸다. ‘닭장같이 비좁은 방’ ‘창문은 사치’ ‘오늘도 벼룩잠’ 등에서 그 응달진 곳의 삶이 여전함을 새삼 확인케 했다.

고시원은 1990년대 후반부터 도시빈민층의 주거지로 전락한다. 이후 고시원은 우후죽순 늘어났다. 인천지역만 해도 2010년 169곳이던 것이 2021년에는 5배로 늘어났다. 2013년 제정된 주거 기본법은 1인 가구가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 공간 기준을 14㎡로 규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도시빈민들은 좁디 좁은 고시원에서 생을 마친다. 강제 조항이 아니다 보니 14㎡는 먼 나라 이야기다. 고시원 대부분의 방 하나 면적이 4~5㎡인 것이 현실이다. 이러니 최소한의 생활집기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벼룩잠을 잘 공간만 허락된다. 창문조차 없는 방에서는 압박감이 온 몸을 조여온다. 그래서 방문을 닫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인천 계양구의 한 고시원 거주자는 “인생 마지막에 찾아오는 곳”이라 했단다. 칠흙같이 어두운 방에서 삶을 영위하다 세상을 떠난 친구 두 명을 떠올린 탓이다.

유명무실한 주거기본법을 보완하기 위해 일부 지자체는 건축조례를 손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소한의 공간이나 창문 확보 등은 기본 인권의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 그칠 일은 아니다. 그들이 참으로 두려워하는 바는, 내일의 희망이 없는 삶 그 자체일 것이다. 그곳으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기약이 없다면 어떻게 삶을 영위해 나갈 것인가. 종로 고시원 화재 때 한 생존자의 외침들이 떠오른다. “또 다시 경제위기가 오지 않도록 정치 똑바로 해야 합니다.” “국가는 나에게 패자부활전 기회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세금이 넘쳐나는 세계 유수의 경제대국이다. 가난구제는 나라도 어렵다고만 할 게 아니다. 흔한 말로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할 때다. 그 어두운 곳에서 그들이 타고 올라 올 희망의 사다리를 내려주는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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