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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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관제 파주문화원장

바야흐로 무더위의 계절이다. 장마로 폭우를 근심하던 날들이 이어졌는데 갑자기 찾아온 폭염(暴炎)으로 집을 나서기도 두렵고, 집안에 머물러도 더위를 피하기 어렵다. 선풍기 바람도 덥고, 전기료도 아껴야 하는데 맹탕 에어컨을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달력을 보니 소서(小暑)가 눈앞이고, 초복(初伏), 대서(大暑), 중복(中伏), 말복(末伏)이 줄지어 섰다.

더위는 예나 지금이나 같을 텐데 선조들의 생활이 어떠했을지 궁금해 옛 글들을 뒤적여본다.

나라를 다스리던 임금들은 이맘때면 옥사(獄事)와 관련해 죄수들의 안위를 걱정하곤 했다. 인조는 비망기에 “오늘 폭염이 매우 심한데 감옥의 죄수를 생각하니 실로 측은하나 마음이 든다. 해조로 하여금 옥사를 지체하지 말고 속히 결방하는데 힘써 병사(病死)할 근심이 없게 하라”고 했다. 무더운 때에 옥사와 관련한 임금들의 걱정은 한결 같아서 왕조실록 등을 통해 많은 기록을 살필 수 있는데 빠른 일의 처리를 통해 무더위에 오래도록 갇혀있는 일이 없도록 했다. 또 경죄수(輕罪囚)와 70세 이상과 15세 이하는 모두 풀어주도록 한 지시도 보인다.

나라를 다스리던 왕을 무더위로부터 지키기 위한 신하들의 노력도 보인다. 영조 21년 6월20일(음)에는 ‘오늘은 빈청(賓廳)이 있을 날이나 혹독한 더위가 이러하여 종일 등대(登對)하시면 정섭(靜攝. 몸과 마음을 안정하여 휴양함)에 방해가 있을까 하여 나와 모일 수 없어 탈품(〈9809〉稟. 국가의 큰 행사나 날씨 때문에 임금의 정무 또는 신하의 일을 일시 정지할 것을 미리 아뢰는 일)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종 때는 황실의 의무를 주관하던 관청인 태의원에서 ‘더위가 심하므로 경효전(景孝殿) 별다례(別茶禮)를 친히 행하겠다는 칙지를 거두어달라는 계(啓)’도 보인다.

선비들도 더위를 피하기 어려웠다. 송암(松巖) 권호문은 시(詩) 더위에 지치다〔病暑〕를 통해 ‘서늘한 곳 찾아가서 못가의 나무를 빙빙 돌고, 갈증을 멈추려 채마밭의 오이를 자주 먹네’ 라고 읊었다. 예나 지금이나 더위에 나무 그늘을 찾고, 오이를 먹는 것은 유익한 풍속이다.

무명자가 남긴 시(詩) 폭염(暴炎)은 무더위를 멋들어지게 읊었다.

‘태양의 열기가 어찌 이리 맹렬한지 / 불 일산(日傘)을 펼치고 화로로 에워싼 듯 / 길 가는 사람들은 목이 말라 괴롭고 / 동산에 심은 채소 시들어 죽어가네 / 맨발로 층층 얼음 밟으면 좋으련만 / 종놈 시켜 큼지막한 부채나 부칠 따름 / 어이하면 하늘 오를 사다리를 얻어서 / 은하수를 기울여 불볕더위 씻어낼까’(안동대퇴계학 연구소, 권영락 (역), 2018)

‘은하수를 기울여 내리는 비는 얼마나 시원하고 달콤할까?’ 고전 탐독을 핑계로 무익한 상념을 오가며 실없이 무더위를 피해간다.

우관제 파주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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