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대통령실은 2019년 11월 7일 판문점을 통해 북송된 탈북자를 언급하며 "만약 귀순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제로 북송을 했다면 이는 국제법과 헌법을 모두 위반한 반인도적, 반인륜적 범죄행위"라고 밝혔다. 불과 3년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국정원, 통일부 등 정부부처도 기존의 입장을 철회했으며, 심지어 외교부는 "보편적 국제 인권 규범의 기준에 비춰볼 때 당시 정부의 답변은 부족하거나 부적절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답변서 작성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점을 대외관계 주관부처로써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반성의 입장까지 내놓았다.
북한의 영토와 북한주민은 분명 우리의 헌법에도 나와 있듯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민이라는 인식에는 부정하지 않는다. 남북은 분명 우리의 의지보다는 국제관계의 질서에 의해 나누어졌고 현재에도 우리의 의지보다는 국제관계 힘의 질서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이렇듯 특수한 상황이기에 북한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가 ‘인도주의’이다. 인도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인종, 민족, 국가, 종교 따위의 차이를 초월하여 인류의 안녕과 복지를 꾀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사상이나 태도”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남북의 특수관계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우선적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 지곤 했다.
인간의 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기에 기아로 굶주리는 북한주민에게 쌀 등을 지원한다던지 탈북자들을 강제 송환하지 않는다는 것에 당연히 찬성하는 입장이다. 다만, ‘인류의 안녕과 복지를 꾀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남북의 특수한 상황에서 상황마다 다르다. 분명 본인의 진술 뿐만 아니라 당시의 합동조사 내용을 보며 그들은 동료 16명을 무참히 살해한 흉악범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다는 현재의 정부가 판단하기에 그러한 흉악범을 우리사회에 두는 것이 과연 우리나라의 안녕과 복지를 꾀한다고 판단한다는 것인가? 만약 우리 동포라 하더라도 한국인 부모님께 미국에서 태어난 이중국적자인 속칭 Komerican이 미국에서 저지른 살인범죄를 피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면 우리나라 정부는 어떻게 할까? 이런 경우에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동포이기에 보호를 명목으로 미국으로의 소환을 하지 않는 것이 인도주의적인가?
특히 이번에는 북한 문제만 얘기하면 늘 ‘퍼주기만 한다’, ‘굴욕적 외교다’라는 원색적 비난을 일삼았던 국민의힘이 이번 문제에 대해 국정감사와 특검까지 거론하는 모습은 ‘과연 인도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기에 충분하다 본다.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Whats the Right Thing to Do?)』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정의에 대해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닌 지속적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하여 상황이 정의를 만든다는 말을 하고 있다. 결국 법의 해석보다는 처해 있는 상황에서의 상황적 판단이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기준이 된다는 얘기이다. 지금 우리에게 처해있는 ‘인도주의’라는 상황이 그러하다.
분명히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는 국정운영의 기조가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한다”고 얘기하며 이번 탈북어민 북송문제를 제기했다. 인도주의적, 인륜적 차원에서 북한에 송환되었을 때 북한어민이 받을 불이익을 잘 알기에 같은 동포로써 북한 주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북송을 금지 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사회의 안녕과 복지를 꾀하기 위해 법의 부재로 인해 사라져간 수많은 생명들의 생명과 인권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을 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 된다고 해명하며 개정하겠다고 하지 말라. 우리 동포의 인권 이전에 우리 국민의 인권을 먼저 인도주의적으로 판단하라.
윤준영 한세대학교 휴먼서비스대학원 공공정책학과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