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문화재연구원, 1개월여 간 태봉·태실조사... 유네스코 등재 본격화
조선왕실의 탄생문화를 밝혀 줄 ‘태봉·태실’이 경기도에서 그 신비한 모습을 속속 드러내고 있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연구원은 지난해 경기 광주시에서 ‘성종왕녀 태실’을 발굴한 데 이어, 최근에는 연천군에서 ‘화덕옹주의 태실’을 발굴했다. 도와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유일하고, 조선왕실의 탄생문화를 보여주는 태실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21일 오전 연천군 미산면 유촌리 산 127 일대에 좁고 가파른 길을 따라 100m가량 오르자, 정상 한 가운데에 안태비(아기비)가 ‘우뚝’ 솟아 있었다. 비석 앞 깊게 파인 구덩이 속엔 높이 94cm, 폭 101cm의 태함(궁가에서 출생아의 태를 묻은 석실)이 출토됐다. 도와 연구원이 최근 발굴조사를 마치고 처음으로 공개한 조선후기 ‘화덕옹주(1728~1731)의 태실’이다.
화덕옹주는 영조와 영빈이씨의 두 번째 자녀로, 사도세자의 친누나다. 연구원은 지난달 16일 화덕옹주의 태봉·태실 조사에 들어가 1개월여 간 발굴 과정을 거쳤다. 화덕옹주의 태실은 58㎡의 면적으로 이뤄졌으며, 조선후기의 지도인 ≪광여도(廣與圖)≫ 등에 나타나 있다. 태함의 몸통인 함신은 셀 수 없는 손길을 거쳐 돌이 맨들맨들한 원형으로 다듬어져 있고, 뚜껑엔 손잡이 같은 꼭지를 만들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특히 이 같은 모양의 꼭지는 다른 태함에선 볼 수 없는 특징이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한 뒤 그 태(태반·탯줄)를 봉안한 곳이다. 조선왕실에서는 자손의 장수를 기원하고 좋은 기운을 주기 위해 명당을 찾아 태를 묻었다. 이 때문에 태함의 바닥에는 작은 구멍을 뚫어 산의 좋은 기운이 태에 들어오도록 만들기도 했다. 태실엔 보통 안태비를 세우고 태함을 묻는데, 태함에는 태와 동전, 금붙이 등을 넣은 2겹의 백자 항아리를 넣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성이 깃든 화덕옹주의 태항아리는 일제강점기에 도굴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수정 경기문화재연구원 수석 연구원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시대의 많은 태실이 도굴 당해 훼손됐다”며 “화덕옹주의 태실 역시 도굴 돼 1994년 마을의 원로들이 열려있던 뚜껑을 바로잡아 놓았다”고 말했다.
앞서 연구원은 지난해부터 화덕옹주의 태실을 비롯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방치, 훼손되고 있는 유산들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경기도 비지정문화재 조사 및 관리 사업’을 하고 있다. 특히 경기도 곳곳에 산재한 조선시대 태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도록 관련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진 연구원은 “태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어 보존 가치가 매우 크다”며 “조선왕실의 탄생문화, 생명존중 사상 등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기에 발굴조사를 지속적으로 하고,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문화재연구원 “태봉·태실 발굴, 세계문화유산 등재 위해 국가 차원 지원 필요”
조선왕실의 탄생문화를 상징하는 태봉·태실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경기도와 경기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경기도 비지정문화재 조사 및 관리 사업’의 일환으로, 경기도 태봉·태실의 발굴조사를 하고 있다. 연구원은 오는 2028년까지 중장기적인 태봉·태실 조사를 계획해 도로부터 매년 사업비 1억7천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연구원은 태봉과 태실이 생명존중이라는 보편적인 사상을 담으면서도 한국 문화만의 희귀성을 가져 보호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 이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뒤 선제적인 관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특히 연구원은 경기도·경상북도·충청남도 등 3개 광역자치단체, 경북문화재연구원·충남역사문화연구원과 협의회를 구성해 조선시대 태실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경기도에는 65곳의 태봉·태실이 있다. 앞서 도와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에서 ‘성종왕녀 태실’을 발굴했다. 이어 최근엔 연천군 미산면 유촌리에서 ‘화덕옹주의 태실’을 확인했으며, 오는 12월까지 경기지역 30곳에서 태실 여부를 확인하는 시굴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태봉·태실이 사유지에 있는 탓에 토지 소유주 등의 허락이 없으면 발굴조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연구원은 최근 파주시와 양평군에 있는 태실의 발굴조사를 추진하다가 끝내 토지 소유주의 허가를 얻지 못해 중단했다. 태실의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측량조사를 해야 하고, 이후 발굴 및 정비 등의 과정을 거친다. 특히 안태비가 있는 경우라도 막상 발굴조사를 하면 태함이 도굴당하거나 유실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태실 연구에 있어 발굴조사는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태봉·태실의 문화재 지정 및 관광지 조성 등 활용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토지 소유주와 지자체 등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가기관 등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태실을 지정문화재로 해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이를 통해 태실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나아가 토지를 매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태실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경기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팀장은 “태실의 발굴·복원·관리에 대한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워 장기 사업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문화재청·지자체·태실 유적의 문종 등이 힘을 모아 토지 소유주를 설득하는 등의 노력으로 한국 고유의 유산인 태실의 훼손과 멸실을 예방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보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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