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편하게 보고 싶습니다”
지난 21일 오후 2시 CGV평촌에서 진행된 가치봄 상영회. 상영회엔 지난 6월29일 개봉한 <헤어질 결심>을 보기 위해 한국농아인협회 경기도협회 안양시지회 회원들과 수어 통역사 등 28명, 비장애인 관객 7명이 상영관에 자리했다. ‘가치봄(배리어프리)’은 기존 일반 영화에 화면해설과 한글자막을 삽입해 시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관람하도록 제작된 포맷이다. 한국농아인협회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영화진흥위원회 및 영화관 업계 등이 주관하는 ‘가치봄 상영회’는 매달 영화 1~2편이 수요가 있는 지역에서 1~2회 진행되고 있다.
이날 극장을 찾은 50대 농인 배미희씨는 “<외계+인 1부> 같이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한국영화도 있는데, 우리는 그런 영화를 바로 접할 수 없다”면서 “이렇게라도 개봉작을 보게 돼 다행이지만, 우리들을 위한 영화가 극장에 더 걸렸으면 좋겠다”라고 수어로 바람을 드러냈다.
한국영화들이 극장가에 잇따라 걸리며 흥행하고 있지만, 정작 시청각장애인들의 영화 관람 환경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현재 경기지역에선 가치봄 영화 상영이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한국영화는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94편이 개봉했는데, 가치봄 버전의 경우 올해기준 7편(8월 상영작 포함)에 그친다. 가치봄 영화를 볼 수 있는 지역과 시간도 한정돼 있다. 도내 31개 시·군 중 의정부, 수원, 용인 등 5~8개 지역에서 주말이 아닌 평일 화~금 시간대에 편성된다. 사전 수요조사에 따른 것이지만 일반 관객이 접하는 기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마저도 극장 측에서 수익률을 이유로 협조를 하지 않거나 수어 통역사 등 관리 인력이 부족한 경우엔 상영 기회가 무산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시청각장애인이 일반 관객 수요에 포함되는 것은 물론 시간·영화 범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영화를 선택하고 비장애인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및 음성 안내 지원 기능이 부가된 키오스크, 자막 수신 안경, 이어폰 등의 장비 구축 등이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의 문화, 여가 생활 보장 등을 담은 관련 내용 법제화, 영화 업계의 인식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황덕경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접근센터장은 “일회성 지원책보다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법제화가 이뤄져야만 극장들의 편성 부담이나 장비 도입 시의 시행착오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구 영진위 영화문화저변화지원팀장은 “가치봄 영화와 일반 영화의 동시 개봉을 위해선 제작 및 배급 업계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다양한 지원 방안을 논의하겠다”라고 밝혔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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