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매력적인 빌런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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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혁 시흥도시공사 도시개발실장

최근 몇 년사이 ‘빌런’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코믹스를 배경으로 하는 많은 영화-어벤져스 시리즈, 스파이더맨, 베트맨 등-에서 등장하는 악당들을 통칭하여 ‘빌런’이라고 부른다. 옛 프랑스어인 ‘빌런(Villein)’의 어원적 유래를 살펴보면, 중세시대 농장(Villa)에서 일한 농장일꾼(villanus)에서 유래된 기아와 가난에 허덕인 농노, 농민을 의미한다. 중세 농민들은 권력자들과 도시민들에게도 천대받으면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도둑질과 강도, 약탈 등 온갖 범죄를 일삼으며 도시의 악당으로 낙인찍히게 되었고, 현대에서 도시의 질서와 정의에 도전하는 영화속 ‘빌런’으로 계보를 잇게 된 것이다.

영화속 빌런들이 많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도시는 뉴욕(New York)이다. 뉴욕 처럼 상징적 초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복잡한 대도시가 빌런들과 영웅들의 활동무대가 된다. 즉, 빌런들이 선호하는 도시는 인구와 경제력이 팽창하면서 도시의 활력과 잉여이익이 충분한 도시이며, 이런 매력적인 도시에 영웅들이 함께 공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빌런은 도시의 어둡고 소외된 슬럼가를 배경으로 도시의 불확실성과 무질서를 증가시키고, 배트맨 같은 영웅은 중세 고딕성당 같은 초고층 건축물의 꼭대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도시의 질서를 지키려 할 뿐이다. 매력과 성장이 없는 도시에 빌런도 영웅도 없다. 배트맨이 수호하는 고담시의 빌런들을 보면 빌런이 되기까지의 이유와 사연이 있다. 대부분 도시의 소외되고 외면받았던 약자였거나, 버림받거나 배신당한 개인이 어떤 계기로 흑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중세시대 농노들이 가난과 천대를 못이기고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고담시처럼 흑화된 슈퍼 빌런들이 판치는 도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도시의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에도 희망을 줄 수 있는 상생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의 쇠퇴로 낙후된 지역의 급격한 재개발이나 강한 물리력 행사로 주민의 반발을 사기보다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우선하는 관용성 높은 도시균형발전 정책이 필요하다.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도시의 슬럼가가 도시 내부에서 적정 노동력을 공급하며 도시의 성장동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저소득층에게는 지속적인 소득과 평등한 교육 지원을 통해 가난을 벗어나는 희망과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실의 도시 저소득층은 영화속 빌런처럼 제거하거나 몰아내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도시의 균형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두가지 요건은 도시개발이익의 낙후지역 재투자 정책의 구조화와 교육격차의 해소이다. 각 지자체마다 신규 주택사업을 추진하면서 발생되는 이익을 구도심과 낙후지역에 재투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초공사를 설립하여 이익환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각종 규제와 재정여건이 열악한 상황이다. 정부의 규제개혁과 유연한 대처가 절실한 시점이다.

도시의 교육격차 해소는 가난과 소외를 벗어나는 희망 사다리이다. 다행히 스마트 네트워크 비대면 시스템의 확산은 교육격차 해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시흥시는 서울대학교와 협력하여 지역의 교육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비대면과 대면교육을 병행하고 있어 타 시·도의 모범이 되고 있다. 교육을 통한 지속적인 기술향상은 도시의 산업 재구조화에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빌런들의 도시는 무질서해 보이지만, 활력과 매력이 있다.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퇴폐미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웅서사를 보기 위해 영화를 보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빌런의 모습에도 열광하는 이유이다. 도시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유지하면서 통제가능한 도시균형발전정책의 실현이 매력적인 도시의 안정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

이재혁 시흥도시공사 도시개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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