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내가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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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디앤아이사회적협동조합 대표

이 세상에 내가 없다면 세상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이 오랜 세월 자신에게 은연중 던졌던 질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며 관계하는 관점의 ‘세계관’이며 나를 세상에서 어떤 위치이자 역할로 생각하는지의 ‘가치관’이라고 하자. 그럼에도 나를 감히 세상과 비교해 배치하다니 오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조금 수정을 하자. 세상에서 잠시 빠져나오기!

이전 여행과 달리 세상에서 홀연히 빠져나가고 싶었다. 존재 의의를 찾으려는 것이 아닌 나만의 고독과 무위가 궁금하다. 어차피 내가 태어나기 전이나 사후에도 세상은 굳건히 이어질텐데 유독 작금에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한 달로 제약된 탈주를 선택한 후에 이어지는 질문들이다.

전기도 없는 문명 뒤편이다 보니 최소로 줄어든 의식주 덕에 중요하다고 할 일도 없다. 만나는 이는 고산병을 유일한 걱정으로 함께 걷는 몇 명뿐이다. 하루 하루 번잡하지 않고 말도 머리도 쓰지 않아서 좋다.

그동안 내게 이런 시간이 있었는지 기억이 별로 없다. 목적과 목표를 향해 치열했던 일에서 벗어난 공백의 희열이다. 그렇다면 한 달보다 더 긴 기간도 좋겠다.

그간의 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을 찾아 즐기거나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심지어 어떠한 일도 하지 않겠다는 작심도 했었다. 회로를 잠시 멈추는 것이 아닌 전원을 아예 뽑자던 결기도 이참에 새로웠다. 세상으로 돌아갈 한 달 후 일상다반사가 다시 주변을 감쌀 때 오늘을 달콤하게 기억할 것이다.

기왕지사 통신이 두절된 곳을 추천한다. 세상이 넓어서 할 일이 많은 곳보다 거친 자연과 극소수의 사람만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거침없이 돌변하는 고산과 황무지, 보기에는 황홀한 설산이지만 낙석과 빙설 떨어지는 소리가 무시로 들리는 그곳은 ‘탈출한 세상 밖’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이었다. 매일 짐을 풀고 싸는 일도 예상 밖으로 번거롭다. 세상 걱정은 고사하고 나의 생명 부지를 위해 나에게 애쓰는 일들이다. 세상에서 빠져나와 내가 없는 세상을, 그래서 나를 다시 보는 그런 세상을 느껴본다.

박태원 디앤아이사회적협동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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