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험지에 가서 출마하라.’ 익숙하며 불쾌한 이 말이 또 등장했다. 대개 그랬듯이 이번에도 보수 정당발(發)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을 향해 쏟아낸 공격이다. 이 대표는 이들이 국민의힘의 우세 지역에서 당선된 사람들이라고 지적하고 좀 더 진취적인 도전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그 방법으로 ‘수도권 열세 지역 출마를 선언하라’고 권했다. 듣는 경기도민이 불편해진다. 보수를 지지하는 도민은 더 그렇다.
이 대표가 회견에서 당선이 보장되는 장소를 언급했다. ‘경상도나 강원도, 강남 3구’다. 여기서 수도권은 ‘강남 3구’다. 결국 그가 언급한 유배지는 ‘강남 3구를 제외한 수도권’이란 얘기다. 그도 ‘서울 강북 지역과 수도권 열세 지역’을 유배지로 꼽았다. 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수도권을 ‘당 열세 지역’이라고 선언한 꼴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수도권 당심’은 좌절한다. ‘강남 3구를 뺀 수도권은 보수의 자갈밭’이라는 인식이 굳어가기 때문이다. 호남도 포용한다는 그의 경기도관(觀)이다.
이 논리에 수도권 정치의 성장을 막는 고약한 프레임이 있다. 윤핵관이 당의 우세지역에서 당선된 사람들이라고 했다. ‘다시 공천받는 세상을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수도권에서는 쉽게 공천 주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현장의 모습이 맞다. 수도권 공천은 선거 때마다 뒤죽박죽이다. 전략공천, 여성공천, 청년공천 등의 사례가 대부분 수도권에 쏟아진다. 거대한 공천 실험장이 된다. 이러니 다선 정치인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스스로를 옭아 매는 패배의식이다.
이런 의식이 경기도를 ‘버려진 땅’으로 고착시켜 간다. 작금의 선거에서 경기도가 민주·진보 진영에 넘어간 것은 사실이다. 전국을 붉은색으로 물들인 6·1 지방선거조차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박빙이었다. 이랬으면 이곳을 우세 지역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공당의 도리 아닌가. 이 대표의 발언은 이와 거리가 있다. 문제 정치인들의 험지 출마 유배와 그 유배지로 수도권을 단정하고 있다. 경기도를 국민의힘의 ‘버려진 유배의 땅’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선언하고 있다.
경기도 보수지지자들과 정치 지망생에게는 난데 없이 얻어 맞은 한 방이 됐다.
경기도 정치도 여야 고르게 성장해야 한다. 대통령으로 커 갈 정치인도 만들어야 하고, 국회를 쥐락펴락할 정치인도 만들어야 한다. 정치 현실에서 ‘힘 있는 정치인’의 기준은 선수(選數)다. 경기도 출신 국회의장이 두 번 있었다. 문희상 의원(의정부)과 김진표 의원(수원)이다. 문 의장은 6선, 김 의장은 5선이다. 둘 다 민주당이다. 보수 정당에는 없다.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는 게 ‘경기 유배지론’이다. 이걸 당 대표란 이가 자기 싸움에 이기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막 써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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