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육 시인 '수수꽃다리 피는 밤'…흔들리지 않는 삶과 시

화려한 수사보다 담담한 삶의 말들이 더 힘 있고 단단한 울림을 줄 때가 있다. 구자육 시인이 첫 번째로 펴낸 ‘수수꽃다리 피는 밤’(몽트 刊)은 소박하지만 단단하고 강인한 수수꽃다리와도 같다. “나의 존재를 찾고 품위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까닭 모를 그리움이 수수꽃다리꽃 향기처럼 은은히 밀려 오면 또 쓰렵니다”라고 한 시인의 말처럼 삶 속에서 건져 올린 단어가 시인의 성찰을 통해 단단한 시로 재탄생했다.

올해로 일흔이 된 시인이 말하는 삶과 시는 유난히 따뜻하고 정겹다. 젊은 시절부터 써내려간 시인의 시에는 행간마다 사랑이 들어있고 인간애가 넘쳐난다. 마치 올곧게 삶을 살아내려 한 시인의 삶이 시로 펼쳐진 듯하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20대 초반 청춘의 흔들리는 초점으로 바라본 세상과 아련한 사랑, 군 입대 후 자신을 가다듬으며 더 강인해질 것을 약속하는 청년의 모습, 두 손녀를 둔 할아버지가 된 시인의 현재까지 삶의 모든 흔적이 녹아 들어있다.

‘퇴근 후/불 켜진 너의 방을 보며/편안함을 느꼈는데/이제 늘 캄캄하구나//…서른 해를 함께한 시간/너의 길을 가야하고/놓아주어야 하는 게 숙명인데/쉽게 놓을 수가 없구나/아직도 네 목소리는 이명처럼 울리는데…’라며 ‘빈 둥지’에선 결혼한 딸에 대한 아버지의 아련함과 사랑을 숨길 수 없다. ‘늦은 밤 수원역 지하 광장/할머니 닮은 가냘픈 미나리를 파신다/덜 되먹은 난 단번에 사지 못하고/다시 돌아와 가격을 묻고 2천 원어치 샀다/대단한 적선을 한 냥//덤으로 한 움큼 더 넣어주신 할머니 정…돌아가신 어머니가/저만치서 보고 계실텐데/부끄럽다 부끄러워’(미나리 中)라며 시인은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기도 한다. 친구, 형제, 연인, 부모님, 자식은 물론 놀이와 냄새, 생활에서 불쑥불쑥 소환되는 내용들은 우리가 가진 보통의 추억, 감성과 다르지 않아 함께 웃음이 나고 가슴이 아려 오고 함께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희대를 졸업하고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으며 녹조근정훈장, 대통령표창을 받은 바 있다. 2019년 67세 때 월간 『한울문학』 시 부문 신인문학상을, 2022년 『수원문학』 시 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미희 소설가는 “가냘픈 듯하면서도 세상을 시어로 말하는 ‘수수꽃다리 피는 밤’은 맑은 물로 삶의 때를 씻기고 새 옷을 입힌다. 시는 화려하지 않지만 들꽃처럼 강인하고 수수한 아름다움이 있다.…50여 년간 일상에서 시를 퍼내는 작업을 하는 시인의 노고가 시집에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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