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지 못했지만 늘 끊임없이 자신을 보여줬고 자신만의 길을 갔다. 관념에 빠진 미술보다는 몸을 움직여서만드는 선이 진짜 살아있는 선이라 여기며 늘 살아있는 예술을 보여왔다. 올해 나이 여든. 2016년 소위 뒤늦게 터진 ‘신체 드로잉’은 현재까지 국내외 미술시장을 휘어잡고 있다.
한국 전위예술을 선도한 이건용 화백의 이야기다.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이건용 화백은 신작 회화와 설치 작품 18점을 전시하는 개인전을 오는 10월 29일까지 선보인다.
전시에서 이 화백은 ‘기후 위기’에 대한 경고를 그의 필살기인 신체드로잉으로 담아냈다. 캔버스를 보지 않고, 캔버스 옆, 또는 뒤 등에서 신체를 반복적으로 움직여 흔적을 남겼다. 눈이 녹고 있는 북극 빙하에 선 백곰의 이미지를 전사해 그 위에 물감이 뚝뚝 흘러내리는 하트를 그려내거나 쓰레기 더미의 사진에 초록 물감이 그어 생명을 표현했다. 눈 내리는 바다 사진을 전사한 대형 캔버스엔 금색과 초록색 물감으로 거대한 원이 신체드로잉으로 입혀졌다. 실제의 모습 그 위에 이 화백이 붓을 들고 온몸을 움직여 관객에게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바탕은 단색의 캔버스와 이미지를 전사한 캔버스가 사용됐다.
최근 갤러리에서 만난 이 화백은 “이미 지구의 문제점이 나타난 이미지들에 이건용이라는 신체가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선으로 관객이 작품을 보는 동시에 현재 지구가 처한 오늘날의 상황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라며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냥 단순한 그림이 아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 같이 더불어 볼 수 있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클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장 내엔 큰 싸리나무가 엮여 그림의 주제를 더 빛나게 한다.
이 화백에게 몸은 단순히 신체를 넘어서 예술의 변주곡을 만들어내는 도구다. 몸으로 선을 그리고 지우는 행위인 그의 대표작 ‘달팽이 걸음’은 퍼포먼스때마다 감동을 선사하며 여전히 현대미술계의 틀을 깬 작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린다는 것 자체가 근대 이후에 지나치게 장르에 얽매이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관념에 빠져버린 듯한 느낌이 많다”는 이 화백은 “진짜 살아있는 선을 보여주기 위해” 신체드로잉을 통해 선을 만든다. 이렇게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노 화백의 선언 같기도 하다.
그는 오는 10월 파리에서 개인전을 비롯해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 전시, 내년 7월부터는 뉴욕 페이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이 화백은 쉼없이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에도 지치지 않고 앳된 소년처럼 미소를 띄며 말했다. “예술의 관념적인 세계를 배제하고 더 실재적인 예술을 통해 예술을 하지 않는 지구촌 사람들과 소통하려 합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내 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게 내 일입니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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