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열복과 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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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실학박물관장

인간사 오래 살지 않고서는 세상의 즐거움을 다 누릴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 살기를 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오래 살 수 있을까. 「산림경제」를 쓴 홍만선은 인간의 수명은 180세인데, 몸과 마음을 손상시켜 수명이 단축됐다고 주장한다.

질병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며 욕심은 질병으로 가는 길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오래오래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으로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청복론’을 제시했다. 정조 연간에 병조참판을 지낸 오대익의 71세 생일을 맞아 다산은 축하 편지를 보냈다. 그 시절에 칠순이 넘는 수명을 누렸으니 복 받은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이 편지에서 다산은 세상의 복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높은 지위에 올라 떵떵거리며 부귀 영화를 누리는 열복(熱福)과 욕심을 내려놓고 맑고 소박하게 한세상을 살다가는 청복(淸福)이 바로 그것이다.

다산이 말하는 열복이란 세속에서 말하는 이른바 성공한 삶이다. 열복은 누구나 원하는 양지바른 삶이다. 그러나 지나치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반면에 청복은 깊은 산중에 살면서 맑은 샘물가에서 발을 씻으며 늙은 소나무에 기대어 소리를 읊조리고 마루 위에 좋은 거문고와 바둑판 하나, 한 다락의 책이 있고 기이한 꽃과 나무, 장수와 건강에 이로운 약초들을 심으며 세월이 흐르는 것을 잊고 나랏일이 잘 다스려지는지 어지러운지를 듣지도 않는 삶을 말한다. 오늘날로 치면 자연 속 웰빙의 삶이다.

두 가지 복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든 개인의 자유지만 다산은 하늘이 잘 내려주지 않는 복이 청복이며 그래서 열복을 얻은 사람은 흔하지만 청복을 얻은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고 했다. 청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 질병이 없어야 하고 전쟁이 없는 태평한 세상을 만나야 한다. 홍만선은「산림경제」에서 질병없이 오래 사는 비법 10가지를 제시하며 괴로움이 닥치면 죽음과 비교하며 이겨내고 늘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며 가정의 화목을 위해 서로 꾸짖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1년 중 가장 넉넉한 날이라는 한가위가 머지않았다. 이웃을 돌아보는 너그러운 마음과 가족 간의 화목이야말로 청복한 삶의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정성희 실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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