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압사 참사에서 드러난 경찰의 과오는 치명적이다. 경찰이 지난달 29일 저녁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신고를 10건 넘게 받고도 적절히 대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일 “사고 당일 오후 6시34분부터 현장의 위험성과 급박성을 알리는 112신고가 11건 접수됐지만 사고 예방 및 조치가 미흡했다”고 사과했다. 경찰의 초기 대응 실패를 자인하고, 정부 책임이 있음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경찰이 공개한 내용을 보면 ‘압사당할 것 같다’는 첫 신고가 들어온 후 ‘사람들이 몰려 쓰러진다’ ‘통제가 안 된다’ ‘빨리 출동 해달라’ ‘아수라장이다’ ‘대형 사고 일보 직전이다’라는 신고가 연이어 접수됐다. 하지만 경찰 대응 조치는 신속히 이뤄지지 않았다. ‘살려달라’는 위급한 신고를 받고도 현장 확인조차 안 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참사 이후 정부가 면피성 해명과 책임론 방어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윤 청장은 “무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고강도 내부 감찰과 신속한 수사를 약속했다. 참사의 1차 책임자로 지목되는 경찰이 475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꾸려 참사 원인과 책임을 규명한다고 하자, 수사 받아야 할 당사자가 수사에 나서는 게 적절하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 무책임, 무능함이 국민 공분을 자아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역 상인단체는 ‘10만명 넘는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가 예상되니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용산경찰서 정보과도 ‘예상을 넘는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경찰은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고, 참사 당일 137명을 현장에 배치했다. 대부분은 범죄예방 활동에 집중됐고, 질서유지 담당은 58명뿐이었다. 그날 저녁 ‘압사’라는 단어가 아홉번이나 언급되는 위급한 신고가 계속됐는데 현장 대응은 허점투성이였다. 사고 방지를 위한 충분한 인원도 투입하지 않았다.
경찰의 가장 큰 임무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다. 112신고는 위급한 상황에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참사를 보면 112신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엄청난 희생을 치른 이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 조치를 하겠다고 공언하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번 대참사에 대한 냉철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대로 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112신고 체계의 재점검도 절실하다. 신고만 받고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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