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한미재단 4-H 훈련농장’의 역사 잊지 않기 위해 목소리 내는 사람들

‘전후 한국 재건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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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에 자리잡은 한미재단의 4-H 훈련 농장 전경. 이창호 (사)더불어사는사람들 대표 제공

지난해 경기도등록문화재 6호로 지정된 ‘부천 한미재단 소사 4-H 훈련농장 사일로(사료 저장용 축산 시설)’ 건물을 제외한 8개동 건물의 보존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사일로를 제외한 주변 건물은 모두 철거되고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수립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에 한미재단 소사 4-H 훈련농장의 역사를 보존하고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있다. 지역 작가와 시민단체 관계자 등 지역의 역사를 기억하고 남기려는 이들이다.

한미재단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나선 이들 가운데 쓰고 그리는 작업을 이어 온 엄효진 작가는 위성도시와 도심을 오가는 지하철 안의 사람들, 대장동 재개발 지역 거주민들의 사연을 통해 사람과 공간을 잇는 아카이빙 작업물 또한 꾸준히 쌓아 왔다.

그는 지난달 21, 22일 양일간 부천중앙공원 광장에서 열린 ‘격동의 흔적, 오래된 미래의 재건’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한미재단의 소사 4-H 훈련 농장을 재조명했고, 귀중한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를 현대화하는 작업에 몰두해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신승직 소사마을기획단장은 현재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미재단 4-H 훈련 농장의 사일로 건물뿐 아니라 부속 건물들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사람들과 연대하고 뜻을 모으는 것이다. 현재 300명가량이 서명을 마쳤고, 지난 여름에는 부천시 도시재생과에 서명운동의 경과를 전달한 상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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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5일 소사 4-H 훈련 농장 부지 내 한 건물 앞에서 이창호 27기 장기교육수료생(오른쪽 첫 번째)을 비롯한 동문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이창호 (사)더불어사는사람들 대표 제공

한미재단에 실제로 몸담았던 이창호 (사)더불어사는사람들 대표 역시 한미재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해 뜻을 펼치고 있다.

이 대표는 1978년 장기 교육생 27기로 한미재단 소사 4-H 훈련농장의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한미재단 설립 70주년인 올해를 기점으로 향후 한미재단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자료집을 발간할 구상도 내놓았다. 그는 “영문판을 만들어 미국과 한국을 잇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 한미재단을 거쳐간 이들의 당시 사진과 현재 사진을 꼭 넣어 후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과거를 공유할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1952년 8월 미국 백악관에서 발족된 한미재단은 올해로 설립 70주년을 맞은 비영리 원조기관이다. 처음엔 서울 신림동에서 시작했으나 1963년 부천 소사읍으로 농장 본거지를 옮겼다. 1979년까지는 한미재단에서 교육이 이뤄졌고 1980년부터는 그 자취를 감추게 돼 현재까지는 동문 모임 등을 통해 명맥을 이어오는 단체다. 한미재단을 통한 미국의 원조는 당시 한국의 전후 상황 재건과 근대화 과정에 큰 기여를 했다. 재단은 당시 구호품 전달, 주택 개량 사업, 버스 등 교통 편의 개선, 새마을 부락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을 돕는 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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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 4-H 훈련 농장 인근 표지판 앞에서 이창호 27기 장기교육생(오른쪽)이 한 교육생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이창호 (사)더불어사는사람들 대표 제공

소사 4-H 훈련농장에 모인 청년들은 일정 기준에 따라 선발된 사람들이었다. 미국의 선진 농축산업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전국 각지, 각 시군 지도소(농업기술센터 전신)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고등학생, 대학생이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이곳에 몸담았던 이들은 고향에 돌아가 새마을운동의 중추가 됐다.

이처럼 4-H 훈련농장은 사회문화적 가치가 높지만, 현재 사일로를 제외한 주변 건물들은 공유지로 지정된 채 방치된 상태다.

부속 건물이 철거될 상황에 놓이자 이 대표는 근대 농축산업 발전사와 사회 문화적 가치를 지닌 시설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소사 농장의 건물 자체를 도시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들면 된다”며 “주변을 방문한 이들이 오고 갈 수 있는 카페나 휴식공간, 전시관 등으로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얼마든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부천을 미국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현재 철거 대상이 된 건물들을 둘러싼 상황이 아쉬울 뿐”이라며 “미국에서도 한국 경기도의 부천이라는 곳에서 1960, 70년대에 우리와 접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게 문화 교류이자 외교이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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