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후 온라인 거래 확대... 전산망 장애 땐 치명적 맹점 도내 화폐발행 3년새 16.2%↓... 문 닫는 은행 점포도 늘어나
카카오 전산망 사태가 터진지 한달여 만에 케이뱅크, IBK기업은행, 우체국은행 등도 전산 장애를 겪으면서 온 나라가 멈춰섰다. 지갑 없이 가벼운 호주머니로 다니는 시대의 치명적 맹점이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활동이 늘면서 온라인 거래·결제 방식이 확대됨에 따라 현금 사용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지폐·동전 같은 ‘화폐’는 취약계층의 경제활동을 돕는 점에서 공적거래의 주축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익명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하경제의 원흉으로 꼽히기도 한다. 오늘날 경기도 안의 화폐는 어디로 향하고 어디에 숨었을까. 현금 없는 사회에서 화폐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편집자주
버스를 탈 때도, 커피를 살 때도 현금이 거부 당한다. 신용·체크카드나 계좌이체 등 비현금지급수단을 통한 지출이 날로 증가하면서 경기도에서도 바야흐로 현금 없는 사회가 도래했다.
21일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전국 가계 및 기업이 상품 및 서비스 구입 등을 위해 지출한 현금의 규모는 꾸준히 감소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3년마다 현금사용행태 조사를 정례 실시하는데, 가장 최근인 2021년 기준 국내 가구당 월평균 현금지출액은 51만원으로 2018년(64만원)에 비해 13만원(△25.4%) 감소했다. 전체 지출액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21.6%로 신용·체크카드(58.3%)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경기도내 현금지출액 역시 전국 통계와 동일한 수준이다.
기업 역시 원재료 구입 등을 위한 현금 지출 비중이 떨어지고 있다. 기업의 월평균 현금지출액은 2018년에서 2021년까지 2천906만원에서 912만원으로 감소(△1천990만원 △68.5%)했다. 기업의 지급수단은 계좌이체 부분에서 큰 상승세(86.0%)를 보였다.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에서 이처럼 현금 사용률이 낮아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결제방식이 간소화된 영향도 있고, 경제 불확실성에 따라 안전자산 확보를 위해 현금을 쓰지 않고 보유하려는 심리도 있다. 실제 가계(23.3%⟶31.4%)와 기업(222만원⟶470만원) 모두 비상시에 대비해 예비용 현금을 보유하는 비중 및 규모가 증가했다.
이와 함께 현금을 ‘쓰고 싶어도’ 쓸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현금은 1만원권의 경우 재화 및 서비스 구입, 사적이전지출, 종교기부금·친목회비로 쓰이고, 5만원권의 경우 경조금으로 쓰이는 편이다. 10·50·100·500원화는 방치 장수가 많아(약 40%) 말 그대로 ‘잠들어’ 있는 상태다.
교통수단도, 프랜차이즈 음식점 및 미용실도, 편의시설도 무인(無人)화와 함께 현금을 거부하는 곳이 늘면서 대부분의 현금이 ‘시장’에 나타나질 않는다. 비단 경기도 내 은행점포만 봐도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227개가 줄어들었을 정도다. 상당수가 이용률 저하로 출장소 전환했거나 공동점포로 운영하거나 철거됐다.
이에 따른 나비효과로, 경기도 내 화폐발행액은 코로나19 이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2019년까지 1조1천950억2천만원(3분기 기준)이었던 금액이 3년 만에 1조13억4천700만원(2020년 3분기)까지 16.2% 낮아졌다.
한은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매장 등에서 과거엔 없던 ‘현금결제 거부’가 증가하고 있다. 일부 사업장은 거래내역의 회계처리 누락 위험과 현금의 분실·도난 위험, 입출금 등 관리비용 부담을 이유로 현금결제를 제한하는 분위기”라며 “고(高)금리 시대에서 현금이 ‘안전자산’으로의 수요가 늘면서 비현금지급수단 이용이 증가하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화폐는 포용적 금융… 현금 가치·영역 지켜져야”
현금 사용 감소는 화폐 시장 축소와도 연결된다. 경기도 안에서 ‘현금’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고 지역 내에 ‘화폐’는 왜 유통돼야만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화폐는 *포용적 금융, 개인정보 보호 등 공적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전문가들은 비현금지급수단으로의 급격한 전환이 이뤄질 경우 추가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서라도 ‘현금’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현금 안 쓰니 전국 화폐 발행액도 ‘뚝’…경기도는 선방
실제로 현금 지출이 줄어듦에 따라 화폐발행액 역시 해마다 떨어지는 추세다.
2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을 통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6년간 ‘3분기’를 기준으로 화폐발행실태를 분석해봤다.
첫해(2017년) 전국 ‘화폐발행액’은 14조1천104억5천100만원에서 최근(2022년) 7조9천58억9천200만원으로 44% 감소했다. 화폐발행액이 줄어든다는 건 순유입 인구 감소와 같은 ‘경제규모 축소’를 의미한다.
한은 경기본부가 발행한 화폐 액수도 같은 기간 1조4천465억2천800만원에서 1조13억4천700만원까지 31% 떨어졌다. 전북본부 발행액이 12%, 경남본부 발행액이 11% 증가한 것과 비교했을 땐 다소 감소 폭이 큰 수준이지만, 부산본부(△59%)나 울산본부(△54%) 등 여타 12개 지역본부들에 비하면 그나마 ‘선방’한 성적이다.
반대로 말하면 전국적으로 화폐발행액수가 낮아지며 경제규모가 축소되고 있음에도, 16개 지역권 중 경기도는 3~4위 수준의 상위권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 경기도 內 화폐, 시장에 돌기보단 가계·기업의 ‘안전자산화’
이어 ‘화폐환수액’을 봤다. 화폐환수액은 훼손, 오염 등으로 재발행하기 부적합한 화폐를 의미한다. 사람들의 ‘손때’가 많이 탈수록 환수액이 커지는 식이다.
2017년 3분기부터 2022년 3분기까지 전국의 화폐환수액은 4조7천억원 수준에서 4조4천억원 수준으로 크게 줄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거래보다 온라인 거래가 주축을 이룬 영향이다. 현금을 만지는 이가 적은 만큼 손상된 화폐도 비교적 적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지역별로 화폐발행액 대비 화폐환수액 비중(화폐환수율)이 낮았던 곳은 ▲경남(6년 평균 10.5%) ▲경기(15.3%) ▲강원(16.1%) 순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높았던 곳은 ▲제주(128.16%) ▲포항(101.5%) ▲목포(100%) 등이다.
시중에 공급된 화폐량에 비해 다시 돌아온 양이 낮다는 건 화폐가 어딘가에 묶여 있거나 외국 등으로 유출되고 있음을 뜻하며, 돌아온 양이 많다는 건 활발하게 유통 중임을 뜻한다.
즉 경기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경제규모 축소 폭이 덜한 상황에서, 그 돈이 시장 안에 돌지 않고 가계·기업 내에 ‘안전자산’으로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된다.
■ 한은·은행권·유통계 등 ‘화폐 수급 동향’ 머리 모아
한국은행도 같은 궤의 인식을 품고 있다. 지난 10월엔 한국조폐공사, 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 등 금융기관, 신세계·이마트 등 유통업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중소기업중앙회 등 유관기관과 함께 ‘화폐유통시스템 유관기관 협의회’를 발족하고 최근 화폐 수급 동향을 공유하기도 했다.
당시 한은은 코로나19가 국내 화폐유통시스템에 미친 영향과 화폐유통시스템의 원활하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필요한 대응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때 협의회에선 “금융기관 점포 및 ATM 수의 감소폭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확대되는 가운데, 일부 현금결제 거부 사례가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현금접근성 및 현금사용선택권이 저하된다”며 “고령층, 저소득층 등 디지털 지급수단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취약계층의 경제활동 제약 가능성이 증대됐다”는 의견이 오갔다.
아울러 국민의 일상적인 현금사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발권당국인 한국은행을 비롯한 화폐유통시스템 참가기관들의 각별한 관심과 대응 노력이 긴요하다고 덧붙였다.
■ 화폐 유통, 양음 있지만 가치는 지키자…“경기북부 현금 접근성 높여야”
전문가들은 ‘얼어붙은 현금 사회’의 장단이 있다고 본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실물 현금도 결국엔 수요에 따라 발행된다. 현재 현금에 대한 수요가 현저히 감소하고 있어 발행액도 줄고, 필요성도 줄어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물 현금이 사라질 때의 이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돈의 흐름이나 거래가 기록이 되기 때문에 회계가 투명해질 수 있고 불법적인 문제가 사라질 수 있다”면서 “반면 지불 수단이 모두 스마트화될 때도 단점은 있다. 해킹 및 도용 문제는 물론 지난번 카카오 사태 당시 우리가 먹통이 됐듯이 손 놓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또 발생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여전히 ‘현금만 쓸 수 있는’ 계층이 존재하고, 비현금지급수단이 확대되는 데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은 만큼 지역 안에서 현금이 갖는 현금만의 가치는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저소득자나 고령자 등의 계층이 현금의 주요 사용층이긴 하나 이 외에도 현금은 여전히 유용하게 사용된다”며 “사회 모든 부분을 현금으로 처리하기엔 어려움이 있겠지만, 온라인 결재 과정에서도 처리 비용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취약계층에겐 비현금지급수단 역시 ‘체감 비용’이 존재하는 만큼 현금만의 가치와 영역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경우엔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과 연계한 현금 인프라를 개선·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정환 동국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병원이나 약국 등 생활 속 필수적인 공간에서 현금을 받지 않는다면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며 “최근 카카오 먹통 사태를 보면 전자금융이 아무리 발전한다 한들, 통신망 장애가 생기면 현금 외엔 결제수단 없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ATM 축소 등 ‘현금 없는 사회’가 실현되면 현금유통망이 무너질 수 있는데, 기본적인 유통 인프라를 개선하면서 현금이 꾸준히 중요한 지급수단으로 유지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 교수는 “군사지역과 농촌 위주로 구성된 경기북부는 특히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노년층 등의 금융 지원을 위한 수도권 차원의 연계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이연우·이은진기자
*포용적 금융: 금융 소외계층에게 금융 접근성을 높여 취약 가구 및 기업에 대한 기회를 확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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