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집이 경매에 넘어갔대요. 제 전세금 어떻게 하죠.” 지난해부터 사회문제화한 전세 사기 피해가 갈수록 확산하는 추세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을 날리게 된 서민들은 추워 오는 날씨 속에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최근 전국적으로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전세금을 떼이는 이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전세금이 집값에 근접하거나 오히려 집값을 넘어서는 역전 현상도 나타나서다. 최근 3년간 발생한 전세금 반환보증 사고의 10건 중 8건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다세대·연립주택이 많은 인천 미추홀구의 경우, 전세 다섯 집 중 한 집꼴로 전세금을 떼일 정도라고 한다.
지난 22일 인천 미추홀구청에 ‘전세 사기 피해주민들을 위한 법률지원 접수처’가 문을 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법률 자문을 구하려는 이들의 줄이 시작부터 길게 이어졌다고 한다. 전세금 8천500만원을 떼이게 된 한 세입자는 지난해 말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런데 몇 달 후 법원 경매에 넘어가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아파트 31가구가 똑같은 처지에 놓였다. 미추홀구 숭의동의 한 아파트에 전세를 든 100여가구 주민들도 근저당 때문에 전세금을 날릴 처지다.
인천경찰청이 지난 7월부터 전세사기 특별단속을 벌여 모두 815건을 적발했다고 한다. 이 중 미추홀구에서는 모두 19곳에서 618건이나 발생, 피해가 집중돼 있었다. 피해 규모가 426억원이다. 지난 8월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도 그랬다. 전국 75개 지자체 511건의 전세금 보증사고 중 53건이 미추홀구에서 발생했다. 이곳 보증사고율은 21%, 즉 5가구 중 1가구 이상이다. 전세 사기는 인천이 특히 취약하다. 인천의 전세가율(전세가/매매가)은 88%로 전국 평균(83%)을 훌쩍 넘는다.
지난 9월 정부는 ‘전세 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방지 및 피해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주에는 후속 대책도 내놓았다. 세입자의 전입신고 다음 날까지는 집주인이 새로운 담보권을 설정할 수 없게 하거나 집주인에게 납세 내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이다. 선순위 보증금 정보를 확인하려고 할 때 집주인이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최근에는 심신 미약자를 꾀어 바지 집주인으로 올리는 사기 수법까지 등장했다. 전세 사기는 우리 사회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다. 이래서야 마음 놓고 집 한 칸 제대로 얻어 살 수 있겠는가. 서민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서도 아무 탈 없다면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니다. 전세 사기와의 전쟁,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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