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 경기일보서 3차 포럼 <完>

1만7천여명 찾기 실마리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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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경기일보 소회의실에서 열린 ‘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 무명의병 3차 포럼에서 강진갑 (사)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매켄지 기록 속 무명의병 이백원의 묘 가능성” 

항일 의병을 기록한 F.A. 매켄지의 ‘대한제국의 비극’에 등장하는 무명의병 중 한 명이 양평에서 발견된 ‘이백원 의병장’ 묘의 주인공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제시됐다. 이름을 남기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무명 의병을 찾는 데 실마리를 제시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28일 오후 2시 경기일보 소회의실에서 ‘역사적 인물의 유해 및 묘 발굴, 이장, 보존에 대하여’를 주제로 열린 ‘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 3차 포럼’에서 강진갑 (사)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이백원 의병장 묘비에 나온 사망 날짜와 ‘대한제국의 비극’에 기록된 무명 전사의병에 대한 설명, 일본군의 폭도토벌지에 기록된 사탄전투의 전사의병, 이백원 후손의 증언 등을 종합하면 전사한 날짜가 일치하고 전사 장소 및 매장된 묘 위치도 일치한다. 또 무덤 형태 등으로 보아 매켄지 기록에 나온 인물과 양평 묘의 인물이 동일 인물일 가능성 매우 높다”고 밝혔다.

이백원 의병장 묘는 지난 2020년 4월6일 박대성씨가 양평군 옥천면 옥천리 산 23-1에서 발견해 양평의병기념사업회에 이 사실이 전달됐다. 이에 이복재 양평의병기념사업회 의병연구자와 최봉주 사무국장은 현지 조사를 거쳐 ‘양평의병 학술논문집’(2020)에 ‘양평의병 의병장 이백원 조사보고’를 발표했다. 이를 강진갑 원장 등 ‘무명의병을 찾아서’ 추진단이 후손과의 만남을 통해 이백원 의병장과 관련된 증언을 뒷받침 하고 묘 발굴과 관련된 논의 등을 이어왔다. 이백원 의병장 묘 비문 앞면엔 ‘의병장 한산이공백원 지묘’가, 뒷면엔 ‘항일의병 양근지구 의병을 결성 왜병과 교전 중 서기1907년 정미 8월17일 차처 남산에서 전사’가 한자로 적혀있다.

강 원장은 “이백원 의병장 묘를 찾은 것은 1만7천명의 이름없는 무명의병을 찾는 과정에서 굉장히 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면서 “이름만 찾은 게 아니라 그의 무덤과 후손까지 찾은 것으로 이 묘를 보존하고 가꾸는 일을 이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명의병 예우 다하고... 역사적 인물 유해·묘 적극 발굴을”

무명의병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전쟁사에 기반이 되는 자료 축적 등을 위해서는 역사적 인물로 추정되는 묘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왔다. 다만 유족과 해당 지역의 관계자가 중심이 된 가운데 관리 주체 등을 명확하게 확정해 역사적으로 보존성을 이어 나가야 한다는 단서가 뒤따랐다. (사)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 (사)경기문화관광연구사업단, 양평의병기념사업회, 무명포럼준비위원회가 주최하고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회가 후원한 이번 행사는 기록되지 못해 독립운동사와 역사의 뒤안길에 밀려난 한말 무명의병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역사의 무대에 다시 올리는 ‘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 프로젝트의 올해 마지막 포럼으로 마련됐다. 포럼에선 매켄지의 ‘대한제국의 비극’에 묘사된 전사한 의병의 묘로 추정되는 이백원 의병장의 묘 발굴과 이장, 보존 방안, 이를 통해 역사적 인물의 유해를 어떻게 보존하고 남길 것인가 등이 논의됐다. 김진균 성균관대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의 사회로 주제 발표와 패널들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 이백원 의병장 묘 발굴 ...역사적 실체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첫 번째 주제 발표자로 나선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잃어버린 무명의병 묘를 찾아서-이백원 의병장 묘 조사, 발굴, 보존 문제를 중심으로’를 발표하며 이백원 의병장의 묘와 관련된 객관적 사실 확인 과정, 후손을 만나 들은 증언 등을 공개했다.

강 원장은 “매켄지 기자의 ‘대한제국의 비극’에 등장하는 무명의병을 찾는 데서 이번 프로젝트가 시작됐는데, 등장한 의병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양평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 의병장 묘를 확인하고 이 의병장이 매켄지 책에 등장하는 인물과 일치한다는 데 신빙성이 높아 이를 확인하는 작업과 절차를 거쳤다”고 밝혔다.

강 원장은 이어 이백원 의병장의 묘 발굴과 관련해 △이장 문제 △현 위치 보존 △양평의병장 묘역 이전 △국립묘지 등 타 지역으로 이전 등은 물론 묘 보존과 관련해 △묘의 등록문화재 등록, 묘역 조성 및 관리와 이백원 의병장 묘 관련 사업 주체 등에 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 양평지역에서 제보가 들어와 양평의병기념사업회의에서 확인 등이 이뤄졌지만 이제는 경기도나 국가보훈처가 나서야 한다”며 “이백원 의병장 묘를 찾은 것은 1만7천명의 이름없는 무명을 찾는 과정에서 상징적으로 굉장히 의미있다. 이름만 찾은 게 아니라 무덤, 후손까지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진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감식관(의학박사)은 ‘고인골 감식과 보존방법’ 주제로 한 발표에서 “미수습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해 국립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은 유족에는 위로, 6·25전쟁의 역사적 의미와 국가관 제고 등에서 의미가 있다”며 “국가의 무한책임 의지를 표명해 전후세대의 국가관 확립에 기여하는 등 정통성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준범 (재)서울문화유산연구원 부원장은 ‘조선시대 분묘의 발굴절차와 연구사례’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20세기 이전의 분묘 사례를 통한 행정절차 문제, 나아가 무명의병의 분묘를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할 것인가 등을 설명했다.

그는 “매장문화재 발굴에는 문헌조사와 지표조사, 시굴조사 등이 있는데 인골에 대한 유해가 나오면 유전자 분석 등도 진행해야 된다”면서 “만약에 양평 의병장 묘를 시굴조사를 거쳐서 의병장이 묻혔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유해의 정황이 나오면 그때 정밀 발굴조사를 해야 한다. 발굴에서 행정적 절차는 3개월, 전체적인 결과 보고까지는 2년가량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부원장은 “조사하고 난 이후 묘를 그대로 놔둘 것인가, 발굴할 것인가, 또 발굴한 이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등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의병장 묘에서 최소한의 표식 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 볼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 역사적 인물의 유해 발굴...경기도, 정부 적극 나서 소중한 자산으로 만들어야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무명의병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전쟁사에 기반이 되는 자료 축적 등을 위해 묘를 적극적으로 발굴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홍종하 경희대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의병장을 확인하고 예우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발굴이 필요하다”면서 “발굴을 통해 두부가 확인된다면 얼굴을 복원하고 그 복원을 통해 매켄지가 찍은 사진과 대조하거나 시민에게 알리는 작업이, 이 사업을 더욱 확산하고 시민들의 마음에 와 닿게 하는 데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진 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의병 유해 조사에는 매우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 같다”면서도 “매장 유품 등 고고학적 의미를 쌓을 수 있는 자료 등이 나오면 부족한 전쟁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쌓을 수 있고 추후 인근 지역을 조사하는 데도 자료가 될 수 있다. 객관적인 고고학 조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의병에 대한 생생한 역사적 사실 덧입히면 역사적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원 확인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복재 양평의병기념사업회 의병연구자는 “일본군 보고서엔 사탄전투의 사망자가 스무명이라고 했지만 매켄지 기록과 마을사람, 후손의 증언은 2명이다. 아마 2명을 죽이고 20명을 죽인 것으로 상부에 보고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게 학술적으로 증명이 돼야 ‘이백원 묘’라는 사실이 뒷받침될 것”이라며 “이백원 의병장 묘로 추정되는 묘 인근에 묘가 또 하나 있는데, 이백원 의병장 묘가 학술적으로 확정된다면, 이백원 의병은 이제 무명이 아닌 유명이 되고, 그 옆에 있는 묘가 무명으로 우리가 밝혀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면서 무명의병을 찾아내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금향 경기도사편찬위원은 “묘의 관리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는 최봉주 양평의병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의 말에 동의하며 “당장 내년부터 시민이 어느 정도 참여할 것인가가 앞으로 이 사업의 확대성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 참여를 위한 캠페인 등을 벌이면 우리 주변에 무명의병이 누가 있었는지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장소의 상징화 등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승원 수원대 사학과 객원교수는 “무명의병의 묘를 찾아내고 확인한 지역에 계신 분들의 의견이 존중돼야 한다. 이번 묘에 관한 확인 작업은 양평과 경기도를 넘어 앞으로 전국적으로 무명의병을 찾는 데 기본적인 샘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매켄지 책에 묘사된 전사한 의병의 상황을 짐작해 전투의 상흔 등 흔적이 남아있을지에 대한 의견도 오갔다. 이혜진 감식관은 “만약 매장됐을 당시 치아가 있었다면 묘 안에 남아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화기류나 칼 등이 관통된 부분은 깊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진균 사회자는 “이번 포럼으로 역사적 인물의 유해발굴과 관련된 모든 문제가 풀릴 순 없지만, 이번 사업을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무명의병을 찾아나서고 무명의 역사적 인물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여러 논의를 해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경기문화재단의 ‘2022 문화예술 일제 잔재 청산 및 항일 추진 민간 공모사업’으로 진행된 ‘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는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독립운동을 펼쳤지만 기록되지 못한 무명의병을 찾아나서고자 역사학계와 시민·문화예술계가 함께 한 프로젝트다.

지난 9월30일 본보 1층 소회의실에서 ‘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 1차 포럼을 연 데 이어 모여 ‘무명의병 포럼’ 조직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한말 의병으로 시기를 한정하고 올해 말까지 기초조사 및 콘텐츠 제작을 목표로 하는 1단계 계획을 완료한 뒤 해마다 단계별 로드맵을 설정해 오는 2024년에 시민과 함께하는 ‘경기 무명의병 기념 횃불 광장’ 조성 등의 사업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정자연기자

※ 이 기사는 2022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 추진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후원: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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