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와 육아에서 벗어나 다시 경력 쌓고 싶어요’
전시·공연 기획, 극작, 작곡, 연출 등 분야에서 지역 예술인들과 시민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해 온 원뮤직랩의 박하나 대표는 올해 1월과 이번 달 두 차례 경력이 끊긴 여성들이 경력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를 부천문화재단과 함께 진행했다. 박 대표는 그들이 캘리그라피, 공예 등 취미로 시작한 일들을 예술 활동으로 이어가는 사례를 많이 봤지만 본격적으로 뜻을 품고 예술 활동을 하기 시작했을 때, 주위에서 이들의 행보에 대해 깎아내리거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접했다.
그가 주목했던 건 바로 창작 시작을 위한 디딤돌형 지원사업은 많지만 경력에 도움이 되는 지원사업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원뮤직랩은 예술 활동이 사회 경력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을 제시해 목소리를 이어오고 있다.
원뮤직랩은 1월12일 부천 못그린 그림 갤러리에서 열렸던 캘리그래피 ‘활짝’ 전시에 이어 7일부터 13일까지 부천 스페이스 작 지하 전시장에서 진행됐던 ‘꽃신-P.O.F.S.(Put on the Flower shoes by yourself)’을 통해 예술형 경력지원에 대한 기회를 만들어내고 그에 관한 화두를 시민들과 나눴다. ‘활짝’에선 강근옥, 문자미, 민혜영, 손인순 등 캘리그래피 작가 4명이, ‘꽃신’에선 강근옥, 명수연, 이보람, 장윤정, 김은지, 황나연 작가가 뜻을 모았다. 이번엔 캘리그라피뿐 아니라 보자기 공예, 위빙, 자이언트 플라워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동참했다.
특히 ‘꽃신’ 전시는 경력형 지원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의제 마련에 대한 근거를 모으는 차원에서 기획됐다. 박 대표는 12일 문화도시부천 시민총회에서 시민이 직접 제안하는 의제로 예술형 경력지원 활성화에 대안을 발표했다. 또 전시 기간 동안 여성에 대한 인식과 의견 등을 취합하는 설문지를 배치해 시민들과 소통했다.
원뮤직랩의 이런 행보에 뜻을 모았던 작가들은 일상에 스며든 변화를 만끽하며 작가로서의 행보를 넓혀가고 있다.
지난 1월 ‘활짝’ 전시에 참여했던 손인순 작가(45)는 달라진 삶을 체감하고 있다. 그는 2018년부터 캘리그래피 활동을 시작했고, 육아와 가사를 이어가면서도 수업과 작품 판매 등의 활동을 소소하게 병행했다. 그러다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고, 대면 활동이 끊기고 아이들은 집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의 활동 무대는 점점 사라져 갔다. 그때 만난 게 원뮤직랩의 ‘활짝’ 프로젝트였다. 손 작가는 “일상 속 스트레스로 인해 나태에 빠져 있다가, 1월 전시를 기점으로 다시 의욕과 확신이 생겼다”면서 “그 이후로 인사동 플리마켓도 경험해 보고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지금은 취미반 정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꽃신’ 프로젝트에 동참했던 김은지 작가(35)는 부천여성인력개발센터를 통해 이번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 작가는 보자기 공예를 접한지 1년이 채 안 된 시점에,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생겨 기쁘다고 전한다. 김 작가는 “전시장에 있을 때 보자기 작품들을 보면서 신기해 하신 분들이 원데이클래스를 듣고 싶다며 제 명함을 받아갔다. 자그마한 변화의 출발점이 된 것 같아 설레는 마음으로 작가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웃어 보였다.
‘활짝’과 ‘꽃신’에 연이어 참여한 강근옥 작가(38)는 개인이 전시를 한 번 기획하려면 대관료·홍보비·인쇄비 등이 크게 부담되므로, 시에서 무료 운영하는 곳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에서 그마저도 요건에 예술 경력이 있어야 대관이 가능해 좌절을 겪었다고 전했다. 강 작가는 그로 인해 이 같은 무대 마련의 기회가 큰 힘이 된다고 말한다. 강 작가는 “혼자서 발품을 팔고 정보를 찾아다니는 건 한계가 있는데, 이런 자리를 통해 함께 교류하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경력을 이어가고 확장할 수 있어 얼마나 기쁘고 다행이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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