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킨스 ‘위대한 유산’ 속 막대한 재산 받은 ‘핍’ 부·권력 쥐고 태도 바뀐다면 신사라 할 수 없어 모든 것 잃은 뒤 인격 쌓으며 오히려 신사로 성장
“너에게 유산을 남긴 사람이 있어. 그렇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 얼마만큼의 유산을 남겼는지는 알려줄 수 없어.”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어떤 사람은 유산이 가진 엄청난 불확실성 때문에 유산에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불안해하기도 할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막대한 부가 상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좋아하기도 할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책 ‘위대한 유산’은 금액도 모르고 누구한테서 받는지도 모르는, 유산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주인공 핍의 성장을 다룬다.
핍은 어렸을 때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누나의 집에서 매형 조와 함께 살고 있다. 누나가 핍과 조를 휘어잡고 살아서 핍과 조는 동지애를 느끼게 되고 이에 굉장히 친한 친구로 발전하게 된다. 핍은 어느 날 부모의 묘소를 방문한 뒤 한 부랑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탈옥수였다. 핍은 이 부랑자의 협박에 그를 도와주지만, 결국 부랑자는 경찰에 잡히게 된다. 몇 년 후, 재거스라는 런던의 변호사가 핍에게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됐다고 알려준다. 유산의 상속 조건은 상속해 주는 사람의 정체를 밝히지 말 것과 핍의 신사 교육이었다. 핍은 자신에게 유산을 상속해준 사람이 해비셤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에스텔라의 짝으로 해비셤이 자신을 지목한 것은 아닌가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된다. 부유한 상속자가 됐다고 생각한 핍은 조의 대장간과 문맹인 조를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고, 신사교육을 위해 런던에 가면서 비디에게 조의 교육을 맡기게 된다. 핍은 자신에게 상속될 ‘막대한’ 유산을 믿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며 런던에서 만난 친구인 허버트의 사업에 자금을 대주기도 한다. 핍은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누나의 집이 아닌 자신에게 유산을 상속해줬다고 생각되는 해비셤의 집만을 방문한다.
주인공 핍은 자신에게 막대한 유산이 상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자기 친구들이었던 조와 비디를 대하는 태도가 갑작스럽게 변해 버린다. 부와 권력이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부와 권력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인격을 바꿀 수 있는 것인가. 사실 핍이 이러한 태도를 보인 이유는 유산을 상속 받았다는 사실을 알기 전 핍이 신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핍은 누나의 죽음으로 오랜만에 고향 집을 방문해 장례를 치르게 된다. 이후 런던에서 생활하던 도중 프로비스라는 남자가 자신을 방문하게 되는데, 이는 과거에 핍이 도와준 탈옥수였다. 이때 프로비스는 상속해준 사람이 자신임을 밝히고 과거 자신에게 도움을 준 핍을 위해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핍을 신사로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핍은 이를 통해 막대한 유산의 환상에서 깨어나고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모든 것을 잃게 된 상태의 핍은 그제야 조와 비디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조가 핍의 호화로운 생활 때문에 생긴 빚을 다 갚아줬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핍은 비디와 결혼한 뒤 조를 방문할 결심을 하지만 조와 비디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간 핍이 행복하게 지내는 조와 비디를 목격 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진정한 신사란 무엇인가. 핍은 언제부터 진정한 신사로 거듭났는가. 핍은 자신에게 유산이 상속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데, 이러한 핍의 모습은 겉보기엔 굉장히 신사 같은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겉만 호화로운 사람들을 신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신사의 사전적인 정의는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남자’다. 호화로운 생활의 핍은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고 예의가 발라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핍에게 점잖은 사람 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신이 힘들었을 시절, 가난했던 시절에 자신의 옆에 있어 줬던 친구들인 조와 비디를 자신이 그들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했다. 그리고 자신이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야 신사로 거듭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름에서 말해주듯, 돈을 중요시하고 돈이 많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되는 사회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유산 혹은 복권과 같이 자신이 열심히 일하지 않았는데도 막대한 부를 주면 굉장히 기뻐한다. 사람들은 돈이 많은 사람들을 동경하고 그들을 부러워한다. 돈이 많은 상태의 핍은 신사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을 잃게 된 핍은 결국 신사의 인격을 가지게 됐다. 대부분 사람이 자본주의에 휘둘려 부유한 사람만을 동경하고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사람이 가진 돈의 양보다 한 사람의 인격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핍의 주변 사람이었다면 돈이 많은 핍과 신사인 핍 중 누구를 동경할까. 우리는 돈을 부러워할까, 인격을 부러워할까.
조수빈 용인 한국외대부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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