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우리 사회의 가장 컸던 논쟁은 입시 비리다. 그도 그럴 게, 비리의 출발이 사회 지도층이었다. 정권 실세라던 법무부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가 불거졌다. 하지도 않은 봉사 경력을 마구잡이로 만들었다. 총장이 작성한 적 없는 대학총장 상장이 제시됐다. 지도층 부모들끼리의 ‘스펙 품앗이’도 있었다. 법무부 장관이 낙마했고 부인에는 실형이 확정됐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대학 입학의 허술함, 양식 없는 지도층의 학력 탐욕을 여지없이 목도했다.
입시 부정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컸다. 입시 부정은 없어져야 했고 그럴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여전히 황당한 입시 부정이 대학 구석에 기생하고 있었다. 그 허망한 일단의 모습이 우리 주변에서 드러났다. 경기대 배구부 실기 전형 부정이다. 체육특기생을 선발하는 과정이었는데, 그 부정 방법이 황당하다. 점 찍어 둔 학생들에게 특정 표시를 하게 했다. 손목에 분홍색 테이핑을 하고 실기 면접에 참가토록 했다.
배구부 감독·코치가 응시자 가운데 11명을 미리 소집까지 했다. 분홍색 테이프도 직접 나눠줬다. 실기 전형 당일 손목에 두르고 오라고 했다. 해당 학생들은 지시대로 테이핑을 두른 채 실기 전형에 참가했다. 면접관으로는 이 학교 교수 1명과 외부 전문가 2명 등 3명이 참여했다. 이게 지난 10월이었고, 지난달 중순에 합격자가 발표됐다. 합격자 7명 전원이 분홍색 테이프를 착용한 학생들이었다. 전원이 합격한 100% 짜고 친 부정이다.
학교 측이 뒤늦게 ‘테이핑 학생’에게 합격 취소를 통보했다. 지난달 19일부터 22일까지 합격 취소에 대한 이의 신청을 받았다. 해당 학생들은 이의를 신청하지 않았다. 테이핑 표식을 통한 부정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학교 측 설명이 모호하다. 부정 사실은 ‘제보에 의해’ 알게 됐고,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평소 경기 성적이 좋았던 학생들을 배구부에 영입하기 위해 이들에게만 테이핑하게 했다”는 해당 감독의 설명만 전하고 있다.
상식적이지 않다. 학생들에게 테이핑을 지시한 것은 감독과 코치다. 실기 전형 면접에 들어간 3명은 이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확히 테이핑 표식을 한 응시생만 꼭 집어 합격시켰다. 사전 정보 교류가 없었다면 도저히 설명 되지 않는다. 올해만 이랬겠느냐는 의혹도 충분히 제기된다. 무려 11명을 사전에 불러 모의를 했다. 특정 학생 또는 학부모에 의한 일회성 비리로 보아 넘기기 어렵다.
학교 측은 감독과 코치를 직위해제했다. 면접관 3명을 포함해 5명을 고발했다. 경찰의 엄중한 수사가 필요하다. 아울러 학교 측에 대한 진상 규명도 병행돼야 한다. 입시 부정이 늘 파문을 일으키는 이유는 그 확장성 때문이다. ‘저런 비리가 학교 모르게 가능했겠느냐’ ‘이번만 이랬겠느냐’는 의혹이다. 경기대가 배구계 역사에서 갖는 전통은 찬란하다. 그 명예가 무너질 수 있다. 한 점 의혹을 남기지 않고 털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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