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의 우크라이나 피란민에 지원 손길 절실하다

국제사회 난민 정책을 총괄하는 유엔난민기구(UNHCR)의 필리포 그란디 최고 대표가 지난달 한국을 찾았다. 그란디 대표는 “현재 전 세계에 1억300만명의 강제실향민(난민)이 있는데 이 중 1천400만명이 우크라이나인”이라며 “전쟁으로 인한 난민 발생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대 규모”라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인에게 가장 혹독한 겨울이 시작됐다”며 한국의 많은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올해 2월 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0개월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의 장기화로 국내외 피란민이 2천만명에 육박한다. 국경을 넘어 해외로 피란을 간 난민은 1천400만명에 이른다. 국외 피란민은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 등 주변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피란민의 대부분이 노약자, 여성, 아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국제사회의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에는 미등록 무국적자를 포함한 고려인이 약 3만명 거주하고 있다. 봄에 폴란드로 떠나면서 우크라이나 출신 무국적 고려인의 안전을 고려해 정부에 군 전용기 투입을 촉구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민간 차원의 항공권 지원을 위한 모금 수준에 그쳤다. 고려인은 한민족이다. 고려인 난민이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입법 대응이 필요한데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난민 인식이 부족하다. 유엔난민기구 그란디 대표도 “한국은 선진국 중 난민 수용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러시아발 전쟁 후 한국으로 온 우크라이나 피란민은 2천5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중 상당수가 안산, 안성, 평택, 화성 등 고려인이 다수 거주하는 경기도에 집중돼 있다. 안산시에는 240가구 600여명의 피란민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은 특별 보호조치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란민은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한다. 2012년 제정된 난민법의 ‘난민’ 인정 기준에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집단만 넣고 전쟁을 포함하지 않아서다. 난민 인정자는 기초생활과 교육 등 기본적인 처우를 보장받지만, 전쟁으로 인한 난민은 규정이 없어 국가나 지자체가 외면하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난민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피란민에 대해선 봉사단체나 NGO 차원에서 돕고 있지만 해외 구호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내 거주 우크라이나 피란민은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생활에 지쳐 있다. 더 이상 모른척 방관해선 안 된다. 경기도와 각 지자체, 시민사회단체 등이 인도적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참혹한 비극 앞에 법과 관할 부서만 따지며 외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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