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우리 딸의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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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청운대 글로벌무역학과 교수

요즘 우리 딸의 얼굴이 심각해 보인다. 평상시보다 부쩍 말이 없고 자기 방에서 무얼 하는지 잘 나오지도 않는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하고는 있지만 그 이유는 알고 있다. 아마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재계약 통보를 아직 못 받은 모양이다.

딸아이는 현재 직장을 비정규직으로 1년을 다녔고 추가로 1년 정도는 연장될 걸로 기대했는데 다시 취업문을 두드려야 하는 현실에 힘들어하는 것 같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니 연말을 맞아 계약 종료로 인해 정든 직장에서 짐을 싸야 하는 계약직 근로자들을 볼 수 있다. 우리 학교 내 조교들도 여럿이 그러하며, 위탁이 종료된 지자체 산하 여러 센터의 직원 등도 그러하다.

필자도 평상시에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생각하다가 내 딸이 그러한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보니 실감이 난다. 같이 힘들다.

지난 10월 발표된 고용 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34%가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또 국내 500대 기업 중 352개 기업의 고용 변화를 분석한 리더스인덱스 결과를 보면 정규직은 1.1% 증가한 반면 기간제 직원은 17.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도 정규직 일자리는 늘지 않고 기간제 고용 인원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혹자는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어 평생직장보다는 평생직업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전 경제에 걸쳐 4차 산업과 글로벌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조직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유연한 인력관리가 필수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근로자들도 이러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성장과 안정이 모두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공유해야 한다.

큰 나무는 가지가 크고, 푸르른 잎사귀를 자랑하지만 이는 뿌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땅에 뿌리를 깊게 내려야 비바람에도, 추위에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지키며 매년 푸르름과 과실을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다. 청년들이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침 최근 호봉제에서 성과급제로의 논의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도 같이 고민되기를 바란다.

김재호 청운대 글로벌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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