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는 맛있는 채식재미는 덤~
내 몸의 감각을 깨우고 관계를 연결하고픈 누구나에게 문이 열려 있다. 경기문화재단의 2022경기권역 생활문화 교류 및 확산 연계사업이 고양시에서도 시민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생활 속의 문화 네트워크 구축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역끼: 엮어서 함께 들어올리기 또는 내려놓기’는 ‘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을 중심으로 화전마을학교, 오후서재가 힘을 합쳐 마련한 생활문화 프로그램이다. 활동기획자들이 서로 협력하고, 시민들 역시 그 교류의 장에 자연스레 합류해 서로 엮여 가면서 관계를 만들어 간다.
별책부록이 총괄을 맡은 이번 프로그램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혼자가 아닌 함께한다는 가치를 나누는 일이다. 따라서 사업에 참여하는 단체들이 서로의 독자성을 존중하고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며 프로그램을 꾸려나간다. 이를 통해 지역민들이 주체가 되는 활동 무대가 더 넓어지고 더 풍성한 이야기로 채워질 수 있다.
화전마을학교를 통해 공유공간 별별을 거점 공간으로 활용하는 엄미애 활동가는 ‘몸을 짓는 밥상’이라는 기치 하에 고양시민들을 위한 격주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환경에 관한 주제를 살려보기도 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거나 아카이빙으로 활동의 순간들을 남겨오는 엄 활동가는 고양시민들과 함께 만드는 문화생활에 관심이 많다. 때로는 동아리처럼, 때로는 연구 모임처럼 활동 방식과 형태를 자유롭게 바꿔 가기도 한다.
활동가 주위로 모여드는 시민들 역시 각자의 관심사와 취향이 다양하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활동을 긍정하는 마음가짐만은 똑같다. 지역주민들과 만남이 이어지고 서로의 인맥이 생겨나면서 사소한 이야기에도 하하호호 웃음이 떠나질 않는 관계가 형성된다.
지난 11월9일 오후 7시 고양시 화전동의 마을공유공간 별별에선 잔잔하게 깔리는 재즈 선율이 바쁜 일상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날 프로그램은 엄 활동가와 정지은 요리연구가가 힘을 합쳐 고양시민들에게 함께하는 비건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자리였다. 공동부엌 프로그램으로 채식문화 활성화를 위한 방법을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15명의 시민들이 제각각 도착한 뒤 서로의 근황을 통해 가족 또는 친구, 연인과의 관계에서 비건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털어놓는 시간이 이어졌다. 제주도 여행을 가서 고기 대신 야채를 구워먹었다는 에피소드나 채식을 시작한지 4~5개월 차에 접어들자 회식 자리에서도 샐러드를 시켜줘 주변의 배려가 늘어났다는 경험 등이 오가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이날 모임을 이끈 정 연구가는 토마토 페이스트, 캐슈넛 크림치즈, 후무스 등의 소스 레시피를 시민들에게 알려주고 요리 과정마다 챙겨갈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짚어주면서 시민들과 레시피를 공유했다. 시민들은 정 연구가의 정성이 깃든 음식을 먹으면서 “양파로 만든 육수에서 어떻게 고깃국물보다 깊은 맛이 나냐”는 반응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날의 최고 인기 메뉴는 가지, 파프리카, 양파, 호박, 버섯 등을 한데 모아 구운 야채들과 토마토소스와 캐슈넛 크림치즈, 후무스 등을 넣어 구운 파니니였는데, 굽자마자 사라지는 파니니에 먹지 못한 시민들이 입맛을 다시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시민들에게 요리를 알려준 정 연구가는 “어떻게 먹어야 채식 생활을 잘이어가는지, 내가 잘 하고 있는지 확신이 어려운 분들을 도와드리려고 한다”면서 “정성껏 만든 음식을 함께 먹는 시간이 각자에게 뜻깊은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웃어 보였다.
이날 모임에서 옆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눴던 김소원씨(48·덕양구 행신동)는 30분 전에 먹었던 비건 파니니가 주는 여운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는 “조미료나 첨가제 없이도 재료 본연의 맛을 극대화시키는 법을 알았으니 집에 가서 실천해볼 생각”이라며 “각자 집에서 해 먹는 비건 음식의 노하우나 팁을 나눠 더 알찬 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김영미씨(54·덕양구 화전동)도 “흔히 채식주의 하면 과일이나 야채를 간단하게 조리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선생님과 이웃 덕분에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요리 방식과 형태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서 “혼자였다면 절대 채식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같이 정보를 공유하고 음식을 나누니까 행복이 배가 된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강상구 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 총괄기획단장 생활문화 네트워크 구축 ‘역끼’ 프로젝트 가동...민간 기획사업 활성화
Q 경기권역 생활문화 교류 및 확산 연계사업을 기획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있다면.
A 고양시내 구석구석에서 생활문화 활동을 이어오던 활동가들이 많다. 이들은 각자 활동하는 데 있어선 경험이 많지만, 서로 협력해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이들의 활동 방식과 생각들을 엮어낼 수 있다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프로그램 기획명도 ‘엮다’의 의미가 담긴 ‘역끼’로 정했다. 서로 활동을 공유하고 경험을 나누면서 소통의 장을 넓히기 위해서다.
여기에 더해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더라도 기록으로 남기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점도 주목했다. 사업에 참여하거나, 타 기관에서 활동하는 사례는 많은데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직접 기록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이 점도 역시 프로그램 구상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켰다.
Q 화전마을학교 등의 연계 단체들과 원활한 프로그램 구축을 위해 소통하는 방식이 궁금하다.
A 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은 생활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증폭하기 이전부터 오랜 기간 지역을 거점 삼아 활동해왔다. 그렇기에 민간 영역끼리의 결속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협력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민·관 협력 사업과는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사업을 진행하며 지키려고 했던 원칙 중 하나는 ‘각 연계 단체의 독자성을 행정이라는 이름으로 침해하지 않는 것’이었다. 화전마을학교의 경우도 엄미애 활동가의 프로그램에 대해 우리가 모든 과정을 검토하거나 체크하면 안 된다. 따라서 서로 협력하는 파트너이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활동가들과 모임을 갖고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지 상황을 공유하는 차원에서의 의견 교환을 통해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Q 이번 사업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는가.
A 이번 사업은 별책부록을 중심으로 화전마을학교, 오후서재 등의 활동 단체들과 연계의 장을 마련하는 기회였다. 사실 고양시에는 이들 말고도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의 생활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역시 그들과 함께 가치를 공유하고 뜻을 이어가고자 한다. 다양한 단체와 기획자들이 이 같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데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기획자들이 모여 시민들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자리가 내년에는 더 늘어날 예정이고, 사업 역시 확장된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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