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빈 교실 예술로 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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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한국예총 수원지회 수석부회장

몇 해 전 전시회에 갔다가 맘에 드는 그림을 봤다. 잘 그렸다기보다는 기교가 느껴지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순수함이 담겨 있었다. 피카소는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그리기 위해 70년을 달려왔다고 했는데, A의 그림에서 그런 생경한 순수함이 느껴졌다. 그 후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미술협회 회원이 A를 만나러 갈 일이 있다며 동행하자고 했다.

 

가기 전 A의 어려운 사정을 듣긴 했지만 막상 생활공간과 작업실을 겸하고 있는 A의 환경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다. 10평 남짓한 사글셋방엔 냉장고와 싱크대, 바닥엔 네모난 작은 상이 놓여있었고, 여러 점의 캔버스는 벽을 이용해 여기저기 세워 있었다. 짐짓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이런 작업환경에서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 놀라웠다. 이 작은 공간에서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러나 조금 큰 그림을 그리려면 생활기구들의 자리를 옮겨가며 그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고 했다. A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문득 몇 해 전 일이 떠올랐다. 지역 중학교에 학교운영위원회 지역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관리자의 간곡한 부탁에 이름만 가지고 있었는데, 지역의 인구 이동으로 학교 3분의 1이 빈 교실이라고 했다. 공간에 대한 욕심에 일정한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 지역 예술가들에겐 작업공간으로, 학생들에게는 예술문화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학생들의 예술체험 및 학교축제 등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과 나아가 학부모들도 자연스럽게 예술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마련하자는 제안이었다. 관리자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며칠 뒤 완곡한 거절 의사를 보내 왔다. 학교 자체에서 논의한 결과 예측 불가능한 화재 및 안전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관리 부재가 문제라고 했다. 구조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겠지만 책임 소재에만 매달리는 행정이, 공공성의 확장보다는 자기 보호에만 연연하는 옹색한 이유처럼 느껴졌다.

 

아이들 감소에 따른 빈 교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학교는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져 가는 사회, 예술로 행복해지는 사회를 꿈꿨으면 좋겠다. 높으신 분들의 소신 있는 고집과 단호한 의지로 빈 교실을 예술로 채우는 반전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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