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화전 인근 불법 주정차

화재 발생 시 신속한 진압을 위해 꼭 갖춰야 할 것들이 있다. 소방대원과 소방장비, 그리고 소방용수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화재진압이 어렵다. 소방대원과 차량 등 장비가 있다 해도 물을 구할 수 없으면 불을 끌 수가 없다. 때문에 길 옆이나 주택가, 시장 등의 소화전은 소방 활동에 매우 중요한 시설물이다.

 

화재 현장에서 소방펌프차의 물이 떨어졌을 때 소화전을 통해 물을 공급받는다. 소방차가 화재 현장에 가까이 갈 수 없을 때도 소화전이 필요하다. 이곳에서 소방호스를 연결해야 불길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소화전 5m 이내에는 차량의 주·정차가 전면 금지돼 있다.

 

5년 전 충북 제천에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숨지는 사고가 났다. 소방차가 긴급 출동했지만, 화재 현장 인근의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로 인해 진화가 늦어져 인명 피해가 컸다. 소화전 주변에 주·정차하는 것은 정상적인 화재 진압에 큰 방해를 초래한다.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대형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소방기본법 제25조에 따르면, 소방 활동에 방해가 되는 주·정차 차량의 강제처분이 가능하다. 차량을 견인하거나 파손해도 된다. 도로교통법 제33조에서는 소화전 등 소화 용수시설로부터 5m 이내에 주·정차가 금지돼 있고, 주·정차 금지 위반 시 승용차는 8만원, 승합 및 대형차량은 9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이는 일반 불법 주·정차 과태료의 2배다.

 

그런데도 소방시설 주변에 불법 주·정차가 여전하다. 소화전 주변 주·정차 금지에 대한 도로교통법을 홍보하고 단속 활동도 하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국민 안전신문고를 분석한 결과, 최근 3년간 경기도내 소화전 인근 불법 주·정차 신고 건수는 2019년 1만7천658건, 2020년 4만597건, 2021년 7만9천298건으로 매년 크게 늘고 있다.

 

불법 주·정차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좁은 도로 사정과 주차난도 있지만 소화전 근처에 주차하면 안 된다는 인식 부족 탓이다. 화재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 소화전 인근 불법 주·정차는, 용수 공급에 문제가 생겨 초동진화를 어렵게 해 인명·재산 피해가 커지게 된다. ‘나 하나쯤이야’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소화전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주차는 내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잠재적 범죄행위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지속적인 홍보와 강력한 단속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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