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9일 과천시 갈현동의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에서 불이 나 5명이 숨지고 38명이 다치는 대형참사가 벌어졌다. 화재가 나면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는 반밀폐된 방음터널을 불에 타기 쉬운 재료로 지을 수 있게 허용하고 방치한 것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 국토교통부는 사고 이후 공사·설계 중인 15곳의 방음터널 공사를 중단 요청했다. 갈현고가교처럼 방음터널에 화재에 취약한 폴리메라크릴산메틸(PMMA)이 사용되는지 파악 후 교체 등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사고가 난 방음터널은 알루미늄 철골 구조에 아크릴의 일종인 PMMA 소재로 만들었다. PMMA는 강화유리 같은 재료에 비해 값이 싼 데다 빛의 투과성이 좋고 가공하기 편리해 많이 쓰인다. 하지만 불이 붙었을 때 녹아내리고, 연소가스가 빨리 퍼지는 등 폐쇄된 공간이나 화재에 취약하다.
PMMA 소재 방음터널 화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8월 부산 동서고가도로 방음터널에서 승용차의 불이 방화벽으로 번진 사고가 발생했다. 2020년 8월에도 수원시 영통구 하동IC 고가차도에서 승용차에 난 불이 방음터널 벽으로 옮겨붙어 200m가량 불에 탔다. 당시 PMMA 소재의 화재 취약점이 의제로 부각되지 않았다.
그동안 여러 기관에서 도로 방음 자재의 화재 취약성을 지적했다. 한국도로공사는 2012년 PMMA의 화재 가능성을 경고했고, 교통연구원도 2016년 PMMA 소재는 쓰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을 국토부에 냈다. 감사원도 2021년 방음터널의 벽이 화염에 취약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가성비가 좋다는 이유로 방음터널 소재로 PMMA가 계속 사용됐다. 불에 잘 타고 유독가스까지 내뿜는 위험한 소재를 방치한 것이 안타까운 사고를 유발했다. 이번 사고 역시 안전불감증이 가져온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틀리지 않다.
전국에 방음터널은 150여곳으로 파악됐다. 경기도에도 방음터널이 70개에 이른다. 41개는 시·군이, 29개는 국토부에서 각각 관리한다. 국토부 관리 방음터널 중 14개는 민자도로에 위치한다. 이들 중 대부분이 화재에 취약한 PMMA 소재를 사용했다.
방음터널은 이름만 터널일 뿐 터널 형태를 한 방음벽이다. 시설의 안전 기준은 사실상 전무하다. 소방법상 방음터널은 일반터널로 분류되지 않아 소방설비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 터널 내 구간마다 환기팬을 설치하지만 차량 배기가스를 배출하기 위한 것으로 화재 발생 시 유독가스 제거는 어렵다. 방음재 불연 기준도 없고, 시설물 안전 점검 및 정밀 안전진단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방음터널에 대한 진단과 함께 PMMA 소재를 불연성 소재로 교체하는 등 안전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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