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핵심기술 국외 유출, 산업간첩죄 적용 엄벌해야

핵심기술의 국외 유출은 기업 생존은 물론 국가 경쟁력과 안보에 위협이 되는 중대한 범죄다. 국익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규제와 단속을 해도 기술유출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은 법과 제도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국가핵심기술인 ‘초임계 반도체 세정장비’ 제조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세메스 전 연구원 등이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는 16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세메스 전 연구원 A씨 등 2명과 기술 유출 브로커 B씨, 세메스 협력사 대표 C씨 등 4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A씨는 2016년 세메스를 그만두고 2019년 다른 회사를 설립한 뒤 2021년 6월 세메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초임계 반도체 세정장비’ 핵심 도면을 C씨로부터 취득해 이를 브로커 B씨를 통해 중국에 유출한 혐의다. 협력사 대표 C씨는 A씨에게 도면을 넘겨주는 대가로 A씨로부터 38억원의 투자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브로커 B씨는 16억원을 전달 받았다고 한다.

 

세메스는 삼성전자 자회사다. 초임계 세정장비 기술은 반도체 기판 손상을 최소화하는 차세대 국가 핵심기술이다. 이런 기술을 빼돌린 행위는 국부를 유출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기업과 국가에 치명적이다.

 

한국 기업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핵심기술이 중국 등으로 유출되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적발된 핵심기술 해외 유출은 36건에 이른다. 이 중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한국이 중국에 앞서가는 분야가 다수다. 피해 추정액이 22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기술 유출로 인한 국부와 산업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기술 유출을 막지 못하면 한국이 초격차를 유지해온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몇 안 되는 분야마저 중국에 따라잡힐 수 있다.

 

문제는 많다. 기술을 유출하다 적발돼도 실형으로 처벌받는 건 10명 중 1명에 그친다. 전경련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산업기술 유출방지 및 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1심 공판 81건 중 28건(34.6%)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집행유예 32건, 재산형(벌금 등)과 실형은 각각 7건과 5건에 불과했다. 한국은 산업기술 유출 범죄 처벌이 지나치게 관대하다. 같은 범죄가 계속 반복되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기술유출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다. 일본은 기술유출 방지와 중요 물자의 공급망 안정을 위해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했다. 대만은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핵심기술 유출에 대해 경제간첩죄를 적용한다. 미국도 ‘경제 스파이법’을 통해 국가 전략기술을 유출하다 걸리면 간첩죄로 가중 처벌한다. 우리도 국내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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