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 구석구석 조명하는 영화들… ‘다음 소희’, ‘성스러운 거미’

'다음 소희' 스틸컷. 다음 영화 제공

 

영화는 현실이 될 수 없지만, 때때로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사회의 단면을 그려낸 영화들은 마냥 영화를 영화로만 소비할 수 없게 만든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영화 속의 누군가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치열하게 버텨내고 있기에, 사회의 음지를 조명하는 영화 두 편을 통해 현실과의 관계를 음미해볼 수 있다.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됐던 ‘다음 소희’가 8일 개봉했다. 지방의 특성화고에서 현장실습을 나가면서 사회인이 되는 과정에 몸담는 소희의 이야기가 관객들의 마음에 파고든다. 소희가 다니던 학교는 취업률이라는 지표를 사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학교의 어른들은 학생들을 도구처럼 취급하면서 성과에만 집착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첫발을 내딛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어떤 환경과 상황에 놓여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정주리 감독은 말하고 있다.

 

영화는 과장과 축소 그 어느 한쪽으로 매몰될 위험을 인지하면서 개인을 사지로 몰아 넣은 사회 시스템의 구조를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그렇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영화는 영화로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과 맞닿은 지점들을 건드리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영화는 회피하지 않는다. 불합리한 사회 구조의 재생산, 묵인하는 방관자들, 반복되는 피해자들의 모습이 모두 제시된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고자 한 이유와 명분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면서 영화의 존재 의의를 납득시킨다.

 

'성스러운 거미' 스틸컷, 다음 영화 제공

 

‘성스러운 거미’도 8일 개봉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영화는 실화에서 출발한다. 2000년대 초, 이란 마슈하드에서 1년간 16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사이드 하네이(일명 ‘거미’)를 추적하는 여성 저널리스트를 따라간다. 뒤틀린 현실을 도발적으로 묘사했던 우화 ‘경계선’(2018년)으로 주목받았던 이란 감독 알리 아바시가 연출과 각본을 맡았고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가 열연을 펼친다. 에브라히미는 이 영화로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감독은 영화 내내 이란 사회에 뿌리 내린 여성 차별 문제를 건드리는데, 마냥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집단의 차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시의적절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한 살인자에 대한 이야기는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매달리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들, 그를 옹호하는 세력들,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들의 관계 등을 짚어가면서 마구잡이로 나열되는 현상의 이면, 더 나아가 그로부터 피어나는 모순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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