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동문학가인 셸 실버스타인의 소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보면 나무는 친구인 소년에게 모든 것을 줬다. 그네를 걸 기둥이 돼 주고, 먹을 열매를 주고, 집을 짓고 배를 만들 몸통을 주고, 그루터기만 남아서도 늙은 소년에게 편히 쉴 의자가 돼 줬다.
이런 생각을 했다. ‘나무가 너무 불쌍한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미련하게 주기만 하지?’ 그러나 최근에 이 나무가 왜 그렇게 소년에게 모든 것을 줬는지 아래 한 줄 때문에 알게 됐다. ‘나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했다.’
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도 왜 행복했을까? 왜 나무가 항상 불쌍하다고만 생각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내가 주는 기쁨을 몰랐기 때문이다.
성경 마태복음 7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서양에서는 이 말씀을 ‘황금률(黃金律·Golden Rule)’이라고 부른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이 구절만큼은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받을 생각만 한다.
인터넷의 수많은 고민 상담은 대부분 자신이 ‘관심, 사랑, 돈’ 등을 받지 못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부부 사이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심지어 종교생활을 하면서도 받을 생각으로 우리 머리는 가득 차 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어떤 종교든 아마 자신이 믿는 신에게 소원을 빌면서 ‘주세요!’만 되새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풍성한 축복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그러나 주는 기쁨을 모른 채 받기만을 갈구하는 사람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캐나다의 명문 사이먼프레이저대 애크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남을 위해 돈을 쓸 때 더 오래,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시카고대의 오브라이언 교수도 “자기만을 위해 돈을 쓰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쾌락의 쳇바퀴’를 도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창조주는 우리가 받을 때보다 줄 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창조한 것 같다.
지금 우리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무언가 결여된 느낌이 든다면, 참다운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고 싶다면 ‘받기만 하려는 생각을 주고자 하는 생각’으로 변화시켜 보자.
많이 가진 사람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환한 미소 한 번, 진실된 칭찬 한마디, 몇 분을 투자한 작은 도움, 조그마한 물질로도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주는 행복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한 삶’이 됐으면 더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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