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문득 ‘나는 행복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때의 기분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죽음의 순간에도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라며 인류의 행복을 염원했다. 행복은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것이다. 물질적으로 부유해서 행복한 사람, 지위와 명예가 높아 행복한 사람, 어떤 목표를 이뤄 행복한 사람, 자녀가 일류 대학이나 좋은 직장에 취업해 행복한 사람 등.
그렇다면 종교와 선인들은 행복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성경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 이렇게 여덟 가지 유형(진복팔단·眞福八端)의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 법륜 스님은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네”라며 행복과 불행의 기준을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조선의 선비들도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키는 안빈낙도(安貧樂道)와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렇게 볼 때 유형(有形)인 부(富)와 물질적 충족보다 정신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 게 아닌가 싶다. 외부로부터 채울 수 있는 것보다 내면적으로 만족하는 것을 행복의 척도로 삼은 것이다. 행복은 좇고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찾고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것을 바라볼 때 불행할 것이고, 다른 집 자식이 일류 대학에 입학하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데 내 자식은 그렇지 못하면 불행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승승장구하는데 내가 그렇지 못하면 불행하다. 반면 오늘 아침 건강하게 눈뜨면 아프지 않음에 행복할 것이고 직장이 있어 일할 수 있음이 행복하고, 책을 읽다가 교훈이 될 문구를 찾아 밑줄을 칠 때 행복할 것이다.
종종 직장 동료들과 식사를 할 때 당부의 한 말씀을 해 달라고 하면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말씨가 고와져 여러분 가족이 행복하고, 또한 여러분 직장을 방문하는 고객이 행복합니다”라고. 허망한 욕심을 내려놓고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 가치와 만족을 찾았으면 한다. 외부로부터 오는 형체를 좇을 것이 아니라 내재적으로 충족하며 일부러라도 행복거리를 찾아 자신의 만족거리를 만들어 가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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