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줌-in] “소희와 유진이 관객들의 마음에 오래 머무르길”…‘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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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제공

청소년 노동자의 사각지대를 똑바로 응시하는 영화 ‘다음 소희’가 지난 8일 개봉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영화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42)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직업계고 학생들의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었다.

 

영화는 2017년 벌어진 전주 콜센터 현장 실습생이 사망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할 때, 관객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요소들은 대개 특정 날짜 정보, 구체적인 지명과 장소 정보들이다. ‘다음 소희’에서는 ‘전주(경찰)서’, ‘교육지원청’과 같은 장소라든가 소희(김시은)의 학교, 인물들이 오고 가는 곳에 대한 단서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지만, 정작 이 요소들이 강조되거나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에 대해 정 감독은 “실제 있었던 일을 스크린으로 불러오는 작업에 있어 현실과 허구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며 “관객들이 사건에 대해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게 영화를 구축하는 작업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영화를 처음 구상할 때부터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정해둔 채로 그 사이 여백을 메워갔다. 콜센터 현장에서 수습 사원이 된 고등학생 소희를 따라가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소희가 사라진 뒤에 수사를 맡게 된 형사 유진(배두나)을 밀도 있게 담아내는 방식으로 전반부와 후반부가 명확히 나뉜 구성을 보여준다. 정 감독은 “이 사건이 단순히 우연에 의해 발생한 게 아닐 거라 생각했다. 왜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는지, 왜 그들은 계속해서 어려움에 처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라며 “영화가 보여주는 구성에 몸을 맡긴다면, 인물들을 통해 피어나는 감흥이 어떤 시점에서 분명히 와닿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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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촬영 현장.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제공

더 중요한 건 ‘다음 소희’가 사건의 비극을 강조하고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정 감독은 원인 규명, 사건의 재구성과 같은 요소들에 깊게 매달리지 않았다. 영화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를 통해 전개되는 회상 구조(플래시백)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 감독은 “한 학생을 끝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몰고 간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을 나열하고, 원인 제공은 누구였는지 등을 파헤치는 작업이 영화의 전부가 됐다면 플래시백을 선택했겠지만 이 영화는 그럴 수가 없었다”라며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인물에 밀착해 그들의 감정과 생각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따라가는 일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 감독은 “제가 이야기를 쓰고 연출을 했지만 그렇다고 소희가 어떤 사람인지 제가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전히 소희를 알아가고 싶고 그에게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 감독은 콜센터 현장에서 겪은 부당한 처우에 신음하고 고립된 채 방황하는 위태로운 소희의 모습을 담아내는 가운데, 해가 저물기 직전 문 틈새로 들어와 슬리퍼를 신은 소희의 맨발에 슬며시 닿는 빛을 꼭 영화에 담아내려고 했다. 그는 “벼랑 끝에 몰린 소희가 자신의 발에 닿는 빛줄기를 보면서 따뜻하다고 느꼈을지, 아니면 그것조차도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르는 일이다. 소희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관객들 각자가 느끼기 나름”이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영화들이 2월의 극장가를 지배하고 있지만, ‘다음 소희’는 개봉한 지 2주가 훌쩍 넘어가는 시점인데도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존재감을 잃지 않고 있다.

 

정 감독은 “영화 개봉 당시보다 최근 들어 영화가 너무 감명 깊었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아 너무 감사하다”면서 “오롯이 혼자 삶의 무게를 버텨내야 했던 소희, 그의 흔적을 따라나선 유진의 이야기가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의 마음에 잊히지 않고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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