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누구는 재산을 숨긴 채 고의로 안 낸다면 ‘조세정의’에 어긋난다. 납세의무를 지킨 국민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끝까지 추적해 세금을 받아 내야 하는 이유다.
국세청이 거둬들이지 못한 국세 누계 총액이 2021년 기준 99조8천607억 원이다. 이 중 ‘못 받는 돈’으로 분류된 정리보류 금액만 88조4천71억원에 이른다. 체납액의 88.5%는 징수가 어렵다는 뜻이다. 수도권의 상황도 비슷하다. 서울·경기(강원 일부 포함)·인천권의 체납 총액은 68조6천729억원, 이 중 정리보류 금액이 61조623억원(88.9%)에 달한다. 100조원 가까운 체납 국세의 90%가 못 받는 돈이라니, 국세청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다.
국가가 부과하는 내국세 중 직접세는 소득세, 상속세, 법인세, 증여세 등이다. 세금을 안 내는 사람 중에는 돈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고급주택에서 호화생활을 하면서 재산을 숨기고 고의로 내지 않는 악성체납자도 상당수다. 국세청은 2억원 이상의 세금을 1년 이상 체납할 경우 고액·상습체납자로 분류해 명단을 공개한다. 작년 한 해 공개된 신규 대상자만 해도 개인 4천423명, 법인 2천517개로 4조4천196억원의 국세를 내지 않았다.
국세청은 징수가 어려운 체납의 경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위탁하고 있다. 그러나 캠코의 징수실적은 0%대다. 최근 5년간 징수위탁 실적(징수율·금액 기준)은 2017년 0.65%, 2018년 0.64%, 2019년 0.68%, 2020년 0.65%, 2021년 0.69%에 그쳤다.
체납자들은 폐업자, 신용불량자, 실종자 등의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실제 그럴 수도 있지만 국세징수권의 소멸시효를 악용하는 등 편법 사례가 많다. 현행 국세기본법상 5억원 이상은 10년, 5억원 미만은 5년이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때문에 ‘세금을 내지 않고 5년만 버티자’는 악성 납세자들이 늘고 있다. 인터넷에는 ‘소멸시효 기간 동안 버티는 방법’ 등의 글이 수두룩하고, 불법 브로커들의 허위 과장광고도 많다.
악성 체납자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국세징수권 소멸시효를 없애야 한다. 국세청은 징수 체계를 개편해 세금을 떼어먹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강력한 조치를 해야 한다. 국세청이 고액·상습체납자의 추적조사를 강화하기 위해 ‘추적전담반’을 늘리기로 한 것은 적절한 조치다. 인력을 늘리되, 전문 능력도 키워야 한다. 불공정 탈세, 역외 탈세, 고액·상습 체납에 국세 행정 역량을 집중해 조세정의를 바로 세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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