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이주노동자의 돼지우리 삶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기자페이지

10년간 돼지우리에서 살다가 숨진 채 버려진 60대 태국인 근로자의 안타까운 사연이 공분을 사고 있다. 이 남성은 1천여마리의 돼지를 키우며 일만 하고 살았다. 돈사와 붙어 있는 가로 2m, 세로 3m쯤 되는 방은 악취가 심해 숨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곰팡이가 가득하고 난방시설도 없었다. 음식을 해먹기엔 너무 지저분한 부엌, 화장실이라곤 바닥에 구멍 하나 뚫린 게 전부였다. 그는 한국말을 잘 못했으며, 다른 태국인 근로자와도 거의 교류없이 홀로 지냈다.

 

2020년 12월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가 난방시설도 없는 포천의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병을 앓다가 숨졌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2021년부터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할 경우, 농·축산업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서류에 거주시설을 ‘주택’, ‘빌라’로 써놓고 여전히 비닐하우스 가건물에 거주한다. 현장점검 등 관리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농어촌뿐 아니라 산업현장 등에서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일이 안 된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이른바 ‘3D 업종’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한국 경제에서 이주노동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구인난 해결을 위해 2004년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면서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으로 오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지난 1월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15만명에 이른다. 이 중 불법체류자는 41만명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11만명이 입국할 예정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차별적 시선은 여전하다.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생활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언어 소통이 힘들고 체류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점을 악용해 인권 침해나 폭행·임금체불 등이 반복되고 있다.

 

과거 한국인들도 해외 각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로서 서러움을 겪으며 일했다. 이를 잊고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하면 안 된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찾아온 이들에게 보편적 인권을 보장하고, 미흡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생산인구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시급한 과제다. 그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 이웃이나 다름없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