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가족 간 스토킹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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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은 엄마 정미희(박지아)에게 방치·학대 등을 당한 가정폭력 피해자다. 그녀는 18년 동안 엄마와 연락을 끊고 살아왔다. 어느 날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는 동은에게 말한다. “핏줄이 그렇게 쉽게 안 끊어져. 동사무소 가서 서류 한 장 떼면 너 어디 있는지 다 나와. 어디 또 숨어봐. 내가 찾나, 못 찾나.”

 

동은처럼 가족·친족으로부터 스토킹 피해를 입는 사례가 종종 있다. 2021년 20대 여성 A씨는 생모의 반복되는 폭언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연락처를 바꿨다. 그러나 이사한 지 한달여 만에 A씨를 찾아냈다. 생모는 A씨의 오피스텔을 두 차례 찾아가 각각 1시간7분, 38분 동안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리는 등 난동을 부렸다.

 

스토킹 범죄 피해에서 ‘가족 관계’는 도망치기 어려운 덫이다. 가해자는 친족이라는 관계를 이용해 실종 신고를 해 피해자를 찾아낸다. 피해자 명의의 도장으로 피해자 주거지에 무단 전입신고를 하기도 한다. 주변인을 괴롭혀 정보를 얻어내는 일도 있다. 2018년 서울에서 벌어진 전 남편에 의한 스토킹 살해 사건처럼, 가족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토킹은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여성의전화의 ‘2022 전국 상담 통계’를 보면 스토킹 가해자는 과거 또는 현재 연인, 데이트 상대자(35.1%)에 이어 전·현 배우자(14.4%), 친족(11.7%) 등의 순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가족관계 등에서의 스토킹 범죄’ 보고서에도 배우자와의 별거나 이혼 과정에서 스토킹 피해를 경험했다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전체의 34.2%로 나타났다.

 

법무부가 스토킹 범죄 피해자 보호를 확대하는 법 개정안을 발표했지만 가정폭력 피해자의 스토킹 범죄는 사각지대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족이나 친족에게 스토킹 피해를 입어도 가정폭력처벌법 적용 범죄에 포함되지 않아 보호 조치에 한계가 있다. 수사기관도 가족 간 스토킹 범죄 수사에 소극적이다. 가정폭력처벌법에 스토킹 범죄 포함, 스토킹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스토킹처벌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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