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기·강원 민간인 고엽제 피해, 실태조사·지원 이뤄져야

비무장지대(DMZ)에 대량 살포된 고엽제로 인해 수십년간 고통받고 있는 경기·강원 접경지역 주민들이 만났다. 17일 강원 철원군 생창리에서 이곳 주민 2명과 파주 대성동 마을 피해 주민 2명이 고엽제 살포와 후유증 등에 대해 털어놨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서부전선과 동부전선 고엽제 피해자들의 이번 만남은 경기일보와 강원도민일보가 주선했다.

 

강원도민일보에 따르면 철원군 생창리 마을을 포함한 동부전선 일대에 1968년 4월15~28일 7천800드럼, 같은 해 5월15일~7월15일 1천5드럼의 고엽제가 살포됐다. 살포된 면적만 약 8천만㎡에 달한다. 철원지역 고엽제 피해자들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민간인이었지만 군부대에 동원돼 살포를 지원했다.

 

김영기씨(89)는 1960년대 말 민간인 신분으로 동부전선 일대에 고엽제를 살포했다. 권종인씨(86)는 3사단 백골부대에 동원돼 1971년 살수차로 고엽제를 살포했다. 보호장비 없이 맨손으로 희석과 살포 작업을 한 탓에 수십년째 피부병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에선 고엽제 후유증이 의심된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으나, 국방부에선 인정하지 않았다.

 

미2사단에 근무했던 파주 대성동 마을 출신 김상래씨(77)와 박기수씨(79)는 군에 있을 당시 고엽제를 살포했다. 이들은 군 근무 때 고엽제 살포에 동원돼 뒤늦게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현행법상 고엽제 피해 지원은 고엽제 살포 당시 군인과 군무원에 한정돼 있다. 때문에 파주의 두 사람은 가까스로 지원을 받고, 철원의 두 사람은 민간인 신분이어서 보상을 못 받는 상황이다. 고엽제가 군인, 군무원, 민간인을 구분해 피해를 주는 게 아닌데도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당시 대성동 마을을 포함해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 고엽제를 살포했던 이들은 피부병과 결핵, 천식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고, 남아있는 이들도 나이가 많아 살 날이 길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정부가 고엽제 피해자임을 인정하고, 합당한 보상과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 군인과 군무원만 피해보상을 하고, 민간인은 제외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역 군부대 요청으로 수시로 고엽제 살포에 동원됐던 주민들이다. 정부가 벌써 전수조사를 하고, 민간인 피해보상에 나섰어야 하는데 안일하고 무책임했다. 늦었지만 파주시가 대성동 마을 주민들의 고엽제 피해 실태를 조사하기로 했다. 피해 지원 조례도 제정할 계획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이다. 경기일보 보도 이후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파주시을)이 고엽제 피해를 입은 민간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반드시 법안이 통과돼 피해자들의 수십년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해 온 주민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적절한 보상과 지원을 하는 게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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