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로시마에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가 있다. 1945년 8월6일 원자폭탄 투하로 목숨을 잃은 한국인의 영혼을 달래는 추모시설이다. 위령비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 히로시마본부 주도로 1970년 4월 설립됐다. 높이 5m 위령비는 한국에서 제작해 히로시마에 옮겨 세웠다.
위령비에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인류 최대의 참극’으로 규정한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명분없는 싸움에 명분없이 죽음의 마당으로 향해야 했던 동포 군인, 괭이와 낫을 들고 소와 말같이 부림을 받던 동포 징용자 등 한국인 5만명이 히로시마에 있었다고 써있다. 원폭 희생자들의 원한과 증오가 사라질 것을 기원한다는 내용과 한국과 일본이 가까운 이웃으로 화친하길 바란다는 희망도 담겨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히로시마 상징과 같은 건물인 ‘원폭 돔’이나 원폭 참상을 알리는 전시관인 평화기념자료관과 달리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찾는 참배객은 드물다. 재일동포 민단이 매달 한 차례 청소를 하고, 8월5일에는 제사를 지낸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했다. 한일 양국 정상의 공동 참배는 처음이다. 윤 대통령의 참배는 한국 대통령으로서도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앞서 원폭 피해 동포들과 면담도 가졌다.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78년간 잊힌거나 다름없이 살아온 한인 피해자의 존재가 한미일 당사국과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게 돼 의미가 크다.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한국인 원폭 사망자와 피해자는 1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5만여명은 원폭으로 현장에서 숨졌고, 5만여명은 심한 부상과 불구의 몸으로 돌아왔다. 살아남은 이들은 부상과 후유증, 피폭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원폭피해자 1세대는 2천여명이 생존해 있다.
윤석열 정부는 원폭 희생자 위령비 참배에 그칠 게 아니라 고령의 생존 피해자와 2·3세대 지원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후세대들도 부모의 피폭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 원인 모를 병과 각종 질환에 시달리며 정상 생활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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