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거리 곳곳에 정당 현수막이 너저분하게 내걸려 있다. 신호등을 가려 운전자와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는 사례가 많다. 게시가 금지된 어린이보호구역까지도 점령했다. 인천에선 전동 킥보드를 타던 대학생이 정당 현수막 끈에 목이 걸려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무분별하게 내걸린 현수막을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은 지자체 허가나 신고 없이 정당 명의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게 하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원래 정당 현수막은 지자체 허가를 거쳐 지정된 곳에만 걸 수 있었다. 하지만 법 개정으로 허가나 신고 없이, 또 장소 제한 없이 15일 동안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정책 홍보 등 통상적인 정당 활동을 보장한다는 취지였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상대 정당 비방이나 지역 국회의원의 치적 홍보가 대부분이다. 정당들의 비방전 내용은 짜증스럽다. ‘거짓선동’, ‘독도괴담’, ‘굴욕외교’ 등 상대 정당을 비난하는 문구들이 피로감을 넘어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현수막 비용도 국민이 낸 정치후원금이나 세금인 국고보조금이다.
국민 원성에 여야가 정당 현수막 관리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고, 개선을 약속했다. 당 대표들도 “국민의 눈을 어지럽히고 안전까지 위협하는 현수막 설치는 지양돼야 한다”(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정당 현수막이 무분별하게 난립하고 있어 큰 우려를 낳고 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며 국민 불편을 지적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8일 ‘정당 현수막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어린이·노인·장애인보호구역에는 정당 현수막 설치가 금지되며, 보행자 통행과 운전자 시야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곳에는 현수막 끈의 가장 낮은 부분이 2m 이상 되도록 설치해야 한다. 또 현수막이 교통 신호등이나 안전표지를 가리면 안 되며 가로등에 2개를 초과해 설치할 수 없다.
새 가이드라인 시행 보름이 지났지만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규정을 무시한 채 버젓이 설치하고 있다. 소상공인·각종 단체·일반인의 현수막은 자치단체에서 마련한 지정게시대에 설치토록 하고 있다. 왜 정치인과 정당의 현수막은 길거리 아무 곳에나 설치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만의 ‘특권 현수막’을 내려야 한다. 아니면 정당과 정치인도 지정게시대를 만들어 걸도록 해야 한다.
현재 정당 현수막에 대한 규제 기준과 관련, 옥외광고물법 개정안 6건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국민을 위한 정치 운운하며 떠들지 말고, 혐오를 부추기는 정당 현수막 관련 법안부터 처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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