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학교급식 ‘죽음의 조리실’, 환경개선 너무 안일하다

학교 조리실은 ‘죽음의 급식실’로 불린다. 급식 노동자들이 열악한 조리실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리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학교급식 종사자들의 폐암 의심 검진 비율은 일반 여성의 폐암 발병률보다 38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2018년 수원 권선중학교에서 근무하던 조리사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가 일한 급식실 주방에선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최대 농도가 기준치의 60배, 초미세먼지가 4배 높게 검출됐다. 그의 죽음이 업무상 질병인 산업재해로 인정된 건 3년이 흐른 2021년 2월이다.

 

학교급식 종사자의 폐암 문제는 목숨과 직결되는 긴급하고 절박한 문제다. 그런데도 조리실 환경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대대적인 조리실 시설 개선 사업을 약속했지만, 지원 수준이 기존 시설 유지에 그쳐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학생들의 밥을 위해 ‘죽음의 노동’을 하고 있지만 교육당국은 조리사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도내에서 폐암 판정을 받은 학교급식 종사자는 모두 32명이다. 올해 4월까지 급식 종사자 1만1천426명을 대상으로 한 폐 CT 검진에서 폐암 의심 판정을 받은 사람은 125명에 달한다. 튀김, 볶음, 구이 등을 조리할 때 나오는 발암물질 ‘조리흄(cooking fumes)’이 폐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도교육청은 16억5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3월부터 각 학교를 대상으로 ‘환기설비 전수점검’에 나섰다. 고용노동부의 ‘학교급식 조리실 환기설비 설치 가이드라인’에 적합한지를 확인해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폐암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는 조리흄의 효과적 제거를 위해선 제대로 된 환기시설이 중요하다. 하지만 배기가 아닌 급기 설비를 갖춘 학교는 도내 2천291개교 중 140여개교(6.1%)에 불과하다. 급기는 실외 공기를 실내에 공급하는 것으로, 급기 설비가 갖춰져야 미세먼지와 세균, 바이러스 등의 오염물질을 막을 수 있다.

 

오염된 공기를 외부로 빼내는 배기 위주의 환기로는 폐암 등의 질환을 예방하기 어려운데도 도교육청은 배기 설비 개선만 반복하고 있다. 배기와 급기 설비를 동시에 해야 환기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공기조화기나 조리흄 저감용 공기정화기 설치 등 현실적 대안이 절실하다. 교육청 차원에선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가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 학교 급식실이 더 이상 죽음의 조리실이 되지 않게 작업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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