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없는 아버지 죽음, 억울해”… 恨 맺힌 70년 [정전 70주년 특별기획]

유족회 “정부·지자체 무관심에 유해 떠돌아… 대책 시급” 촉구

올해는 1953년 7월27일 맺어진 6·25전쟁 정전협정이 70주년을 맞는 해다.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남침한 1950년 6월25일부터 정전협정 체결까지 약 3년 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대한민국 곳곳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멍들었다. 우리나라에서만 99만968명이 사망 또는 부상, 행방불명됐다. 이 중 12만8천740명은 경기도민이었다. 한민족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참혹한 대가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잠시 멈춰진 전쟁 뒤편에는 억울하게 가족을 잃거나 전쟁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념 갈등이 커지면서 애꿎은 민간인이 억울한 누명과 함께 희생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의 이야기다.

 

학업을 포기하고 전쟁터에 뛰어든 ‘소년병’들은 전쟁 이후 피폐한 삶을 살고 있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보상 및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북한군에 의해 민간인이 강제로 납북된 ‘납북 피해자’ 사건은 조금씩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 이에 경기일보는 어두운 곳을 밝혀 세상에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는 의미의 ‘경기ON팀’을 통해 멈췄지만 끝나지 않은 6·25전쟁 관련 피해자들을 집중 조명하고 이들의 아픔을 달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데 앞장서고자 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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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 피해자의 딸 서영자씨가 고양특례시 금정굴에서 백골이 된 유해의 사진을 들어 보이며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금정굴은 1950년 9월28일 서울 수복 직후, 고양·파주지역에서 치안을 담당한 태극단원과 경찰이 인민군에게 협조한 부역자를 처벌한다는 명분 아래 민간인 수백명을 집단학살하고 암매장한 곳이다. 조주현기자

■ 잊히지 않는 그날의 기억

 

“남은 가족은 어떻게 살아가라고 죄 없는 우리 아버지를 붙잡아 죽여…억울해, 나 너무 억울해.”

 

31일 찾은 고양특례시에 있는 황룡산 끝자락. 산책로를 따라 5분가량 올라간 이곳에는 ‘금정굴’이라고 적힌 푯말과 함께 회색빛 천막으로 급조된 비닐하우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쪽을 살펴보니 성인 남성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구멍이 초록색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날 만난 채봉화 금정굴 유족회장(75)은 이곳이 1950년 10월 지역주민 200여명이 무참히 학살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피해자인 채기동씨의 딸이기도 하다. 채기동씨가 죽임을 당했을 때 네 살이었다고 말하며 울먹이던 그는 “평생을 아버지라는 존재를 모르고 살아왔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정치적 성향과는 전혀 상관없이 희생됐다. 그런데도 일부 이웃들로부터 ‘빨갱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함께 억울하게 죽은 사람에게 가해지는 이웃들의 멸시가 배고픔보다 더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같은 이유로 아버지를 잃은 서영자씨(79)는 희생된 아버지의 사진을 목에 걸고 여의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유해를 안치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해명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씨는 “금정굴에서 발굴된 유해만 153구에 달한다. 하지만 유해 보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현재는 세종시에 있는 추모의 집으로 이전됐다”며 “정부와 지자체 등의 무관심으로 인해 피해자들의 유해는 엉뚱한 곳에 가 있고, 억울한 혼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피해자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한 지원은 정권에 따라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다. 결국 유족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민경철 경기연합유족회장은 “11세 때 아버지가 희생된 이후 ‘빨갱이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왔다. 이 같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위령제 지원을 비롯해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이 절실하다”며 “국가가 국민의 억울한 죽음을 책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경기ON팀

 

 


※‘경기ON팀’은 어두운 곳을 밝혀(Turn on) 세상에 온기(溫氣)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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